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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증촌리석불좌상(尙州曾村里石佛坐像).경북 상주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상주증촌리석불좌상(尙州曾村里石佛坐像).경북 상주

푸른새벽* 2008. 8. 29. 17:04

 

 

 

 

 

 

 

 

 

 

 

 

 

 

 

 

 

 

 

 

 

 

 

 

 

 

 

 

 

 

 

 

 

 

 

 

 

 

 

 

 

 

 

 

 

 

 

상주증촌리석불좌상(尙州曾村里石佛坐像)


함창 읍내에서 경북선 철길을 넘자마자 오른쪽 길로 증촌리 마을 뒤쪽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암자같은 절집 용화사가 나온다.마당에 들어서면 감나무 뒤쪽에 흩어진 석재들이며 짝이 맞지 않는 지붕돌과 몸둘을 어설프게 얹어놓은 석탑 등이 오랜 옛적부터 절이 있어왔던 자리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용화사의 본전인 미륵전에는 석불 두 구를 모셔놓았다.한 분은 입상이고 한 분은 좌상이어서 서로 키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건만 사람들은 '미륵님'이라 부르며 지성으로 받든다


입상은 1.98m의 판이 그대로 광배를 이룬 가운데에도 도독하게 선 모습이다.전체적으로 많이 닳아져 광배의 세부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데 육계가 분명한 머리에 얼굴은 다소 긴 편이고 손은 앞쪽으로 모으되 아래 위로 놓여 있다.둥근 어깨 아래로 통견의 옷자락이 가슴께에서 U자 모양을 이루며 다소 도식적으로 흘러내리고 있다.무릎 아래는 파묻혀서 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퇴화된 인상의 이 입상은 통일신라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보물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옆에 나란히 모셔진 좌상은 보물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불신 자체는 1.68m이지만 8각 연화대좌 위에 우뚝 앉아 위용을 갖추고 있다.머리의 육계 부분이 깨어지고 광배는 잃어버린 상태지만 비교적 제모습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원만한 얼굴에 벌어진 어깨,불룩한 가슴,한 손은 무릎 위에 손바닥이 위로 보이게 놓여 약합이 올려져 있으며 한 손은 땅을 향한 항마인을 하고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약합만 아니라면 석굴암 본존불의 자세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셈이다.다리 아래로 흘러내린 상현좌의 옷주름이 몸체와는 떨어져 대좌 위에 새겨져 있는 점이 다르면 다르다면 다를까 어깨가 벌어져 강건한 모습이지만 풍만하고 유연하다기보다는 딱딱하게 긴장한 듯한 경직성이 느껴진다


불신을 받친 연화대좌는 8세기 무렵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하대에는 엎어진 겹연꽃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중대에는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잎 하나하나에 다시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매우 화려하다.중대석이 높직하지 않아 안정감이 느껴진다.전체적으로 위엄 있는 신라 하대의 불상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상주증촌리석불좌상(尙州曾村里石佛坐像)


보물 제120호 
경북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258-2 


경상북도 상주군 용화사에 모셔져 있는 높이 1.68m의 석조불상이다.

 

거의 직사각형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어깨와 팔, 다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직선적이고 각이 진 모습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강인하며 경직된 느낌을 준다.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가 있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신체에 밀착하여 얇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있으며 왼손에는 약 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을 형상화한 것이 분명하다. 광배(光背)는 남아 있지 않으며, 대좌는 8세기에 많이 나타나는 8각의 연꽃무늬 대좌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수평으로 길게 뜬 눈, 미소없는 작은 입, 군살 붙은 턱 등의 세부표현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임을 알려준다. 통일신라 중기의 풍만하고 균형있는 표현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형식화되고 경직화되어가는 특색을 잘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