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수락산 흥국사(水落山 興國寺).경기 남양주 본문

☆~ 절집.절터/경 기

수락산 흥국사(水落山 興國寺).경기 남양주

푸른새벽* 2008. 9. 5. 07:18

 







 




 

 







 

 







 

 




 







  

 







 

 







 

 




 






 




 

 
수락산 흥국사(水落山 興國寺)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1


흥국사(興國寺)는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1번지 수락산(水落山)의 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599(진평왕 21) 원광(圓光)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처음에는 절 이름을 수락사(水落寺)라고 했다 한다. 그 이후의 역사는 한동안 전하지 않고, 1568년(선조 1)에 이르러 왕이 그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願堂)을 이곳에 지으면서 〈흥덕사(興德寺)〉라는 편액을 하사했으며, 1625년(인조 4) 다시 절 이름을 지금의 흥국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1793년(정조 17) 왕실에서 기허(騎虛) 스님에게 내탕금을 주어 사찰 전체를 중수하게 했다. 1818년(순조 18년)에는 만월전(滿月殿)과 양로실(養老室)을 제외한 절 전체가 소실되었는데, 그 4년 뒤인 1822년 다시 왕실에서 내탕금을 내려 기허 스님으로 하여금 대웅전·시왕전·대방(大房) 등의 건물을 중수케 하고, 연화경 7축으로 경회(經會)를 열게 했다.


또 1856년(철종 7)에는 은봉 대덕(隱峰大德)이 신도 양씨의 도움을 받아 만월전을 고쳐지었으며, 1870년(고종 7)에도 시왕전을 중수하였다. 또한 1878년(고종 15)과 1888년(고종 25)에 각각 용암(庸庵)·제암(濟庵) 두 스님이 시왕전과 법당·요사를 중건했다. 그리고 1917년에는 범화(梵華) 스님이 여러 당우를 고쳐지었다고 한다.


위의 연혁으로 보아 흥국사는 조선 중기 이후 왕실의 원당으로서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한편 1790년(정조 14)에는 봉은사·봉선사·용주사·백련사 등과 함께 오규정소(五糾正所) 가운데 한 사찰로 선정되면서 사격(寺格)이 더욱 높아지기도 했다. 오규정소는 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이 머물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동시에 관할 사찰들을 관리하던 곳이다.


앞에서 보듯 흥국사는 왕실의 원찰로써 발전했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성보문화재가 많은 편이다. 우선 지금도 남아 있는 각 전각을 연결하는 돌계단을 보더라도 단정하게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건실한 축조수법으로 쌓아 이곳을 밟는 사람들이 한눈에 다른 곳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느낄 정도다. 또 서울의 다른 절에서 속말하기를, “덕절 중은 불 때면서 불 막대기로 시왕초를 그리고, 화계 중은 불 때면서 초갈향(初喝香)을 한다”고 할만큼 불화들이 많다.


지금 건물로는 대웅보전·만월보전·영산전·독성전·만월보전·시왕전·단하각·범종각·응향각·반산암·큰방 등이 있고, 각 전각 안에는 불보살상과 불화들이 빠짐없이 봉안되어 있다. 그밖에도 삼층석탑과 흥국사기적비(興國寺紀蹟碑) 덕흥대원군신도비 및 부도 2기와 신도공덕비 등이 있다. 또 각 전각에는 유서 깊은 주련과 편액도 여럿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