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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적산 묘적사(妙寂山 妙寂寺).경기 남양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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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적산 묘적사(妙寂山 妙寂寺).경기 남양주

푸른새벽* 2008. 9. 7. 09:59





 

 









 

 









 





 

 









 





 

 





 





 





 









 





 

 









 

 





 

묘적산 묘적사(妙寂山 妙寂寺)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면 월문리 222

 

묘적사(妙寂寺)는 남양주시 와부면 월문리 222번지 묘적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절은 신라 문무왕(재위, 661∼680)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말이 내려오지만 지금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기록이나 유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1 양주목(楊州牧) 불우조(佛宇條) 기록 가운데의 ‘묘적사재묘적산유김수온기(妙寂寺在妙寂山有金守溫記)’라는 간접적인 기록을 통하여서만 조선시대 세조(世祖) 당시에 이 절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그밖에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 있는 이제면(李濟冕)이라는 사람의 묘와 묘비를 통하여 절의 폐사 무렵을 짐작할 수 있다. 곧 이 묘비가 세워졌던 1720년(숙종 46) 무렵에는 절 경내에 민간의 무덤이 들어설 정도였으므로 이 무렵에는 절이 거의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절에 대한 기록 가운데 <묘적산산신각중건기>에 따르면 1895년(고종 32)에 규오법사(圭旿法師)가 산신각을 중건했다고 한다. 그 뒤 1969년의 화재로 대웅전·산신각 등이 소실되었다가 1971년 자신(慈信) 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가 중건되었다. 그리고 다시 1976년에 대웅전·관음전·마하선실이 중건되었고, 1979년과 1984년에는 나한전과 산신각이 각각 완성되었다.


한편 이 절에 내려오는 말로는 묘적사는 본래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 따르면, 이곳에 일종의 왕실산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사찰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승려교육과 아울러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두 차례는 잘 막아냈으나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결국 이 절이 완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 들어와서도 제4공화국 당시 이 같은 묘적사의 특수 성격을 이해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과거와 같은 호국교육장으로서의 복원을 위한 불사가 있었으나 박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그 같은 복원공사도 중지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같은 말은 이 절에 남아있는〈활터〉라는 무예연습장과 상응되는 것으로서, 호국불교의 이념아래 국난 때마다 빠짐없이 국가 수호의 첨병으로 활동하기도 하던 한국 불교의 성격과도 관련시켜 좀더 연구해 볼 만한 내용이 아닐까 한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묘적사이지만 현재는 이 절의 창건시기를 확연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대웅전 앞에 팔각칠층석탑이 남아있어 이곳이 고찰임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현재 있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서 나한전·산령각·관음전·마하선실·요사 그리고 별채가 있는데, 마하선실과 관음전은 요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대웅전은 1976년에 중건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제법 당당한 규모를 하고 있다. 안에는 석가부처님 외에 영산회상도·신중도·칠성도 등의 불화와 범종 하나가 있다. 불상 및 불화들은 전부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나한전은 석굴로서 안에 석가불상과 16나한상이 있다. 또한 대웅전과 같이 지어진 요사의 기둥은 별로 손질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여 이채롭다. 이처럼 지금은 기록과 유물 양면에서 다 같이 풍부하지 못한 묘적사이지만, 지금의 경내 훨씬 벗어난 평지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옛 기와 파편들은 예전의 융성했던 사세(寺勢)를 나타내주고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