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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대웅보전(興國寺大雄寶殿).경기 남양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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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대웅보전(興國寺大雄寶殿).경기 남양주

푸른새벽* 2008. 9. 6. 00:28

 

 

 

 

 

 

 

 

 

 

 

 

 

 

 

 

흥국사대웅보전(興國寺大雄寶殿)


남양주시문화재자료 제56호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1


신라 진평왕(眞平王) 21년(599)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이곳에 가람을 창건하여 수락사(水落寺)라 했고,
그 후 조선 중기까지의 사찰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있다.

 
조선 선조(宣祖) 원년(1568) 왕이 그의 생부(生父)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원당(願堂)을 이 절에 건립하고 대원군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흥덕사(興德寺)라는 이름의 편액(扁額)을 하사하여 고쳐 부르게 하였는데 민간에서 '덕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원당 때문이다. 인조(仁祖) 4년(1626)에 다시 흥국사(興國寺)로 고치게 하였고 그 후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대웅보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는 주불전(主佛殿)으로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정조(正祖) 17년(1793)에 중수(重修)가 있었고 순조(純祖) 18년(1818)에 화재를 당해 순조 21년 중건(重建)하였으며 일제시기인 1917년에 중수가 있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수평재인 창방(昌枋)과 평방(平枋) 위에도 공포(공包)가 놓인 다포계(多包系)형식이며, 지붕은 사면에 모두 처마가 둘려 한옥의 지붕 중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면 3칸의 각 칸에는 사분합의 띠살문(세살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모두 들어열개 형식으로 개폐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포는 외1출목·내2출목으로 연봉과 연잎, 그리고 봉황 등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조각 수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네 귀의 추녀를 받치기 위해 기둥보다 가느다란 버팀재로 활주(活柱)를 세웠으며 그 위의 추녀마루 위에는 궁궐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잡상(雜象)이 배열되어 있어 이 사찰이 조선 후기 왕가(王家)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던 사찰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