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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흥국사 돌아보기.경기 남양주

푸른새벽* 2008. 9. 8. 11:08

경기 남양주

내가 사는 곳에서 강 건너 빤히 보이는 고장

그곳 남양주에 흥국사와 묘적사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매번 벼르기만 하고 쉬이 찾지 못했던 것은 우습게도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때문

하지만

흥국사는 집에서 그리 가깝지 않았다  

행정구역으로는 경기 남양주라지만 실제는 서울 노원구에 더 가까웠다

 

 

9월이라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흥국사의 일주문도 더위로 뽀얗다

 

 

 



자동차로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절집에서는 보기드문 건물이 먼저 보인다

왕실과 관련이 있는 절집에서 보던 대방채이니 흥국사가 왕실의 원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돌아볼 거리가 많은 전각이다

 

 

 



주차장에서 마주 보이는 대방채는 돌아나오면서 살피기로 하고

대방채 오른쪽 나무 사이로  작은 처마지붕이 아릿하게 보이는 사잇길로 들어섰다

 

 



 

멀리서 처마지붕만 보이던 건물은 범종각이었다

그런데 좀 생경하다

범종각 세 기둥앞에 푸른색을 입힌 장승이 버티고 있어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것이

왠지 낯이 설다 

 

 



 

범종각 가운데 기둥 앞에 있는 장승

홀쪽한 장승의 발 아래부분에도 또 다른 조각이 새겨져 있다

각별하게 범종각 앞에 이런 장승을 그것도 셋이나 세워 놓은 것은 필경 어떤 연유가 있을 듯...

 

 

 



날아갈 듯한 모습의 흥국사목어와 법고

그 아래에는 법고대이지 싶은 臺가 놓여있고...

 

 

 



괴이한 표정의 장승 셋이 버티고 있는 범종각 옆에는 이런 오래된 나무조각도 있었다

오래전 어느 건물 누마루로 오를때 유용하게 쓰였던 나무계단은 아니었을까

 

 



 

범종각을 살피고 돌아서면 흥국사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듯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흥국사의 지킴이 셋

부실부실한 검정과 회색의 털을 가진 삽사리 두 마리와 흰둥이

낯선이가 들어서도 사납게 짖거나 하지 않고 의연하다

 

 

 



흥국사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형식 팔작지붕 건물인데

네 귀의 추녀를 받치기 위한 활주(活柱)가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 왕가(王家)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던 사찰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흥국사 대웅전 추녀마루 위에 배치된 잡상(雜象)

잡상은 궁궐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


 



 

처마 모서리에 장식된 토수

토수는 일반적인 건물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고 궁전이나 관아의 건물에만 사용되었다고 하니

대웅전 지붕위의 잡상이나 처마끝의 토수로 보아 흥국사가 조선 왕실과 관련이 깊음을

또 한번 알 수 있다
토수는 고려후기부터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통 이무기나 잉어 같은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흥국사대웅전의 토수는 이무기보다는 잉어같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과 소맷돌

소맷돌끝의 장식도 삼태극문양이다

 

 

 



흥국사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들

불상뒤의 광배가 무척이나 화려하고 장엄하다

 

 



 

흥국사대웅전 처마를 장식한 용머리

흥국사 대웅전 처마엔 용이 한 두마리가 아니다

 

 




대웅전 측면의 문을 통하여 본 영산전의 처마장식

영산전도 대웅전 못지 않게 처마장식이 용머리로 가득하다

 



 

흥국사 산신각으로 오르는 왼편에 놓여진 석조물

어떤 용도로 쓰였던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대웅전 뒷편 처마끝에는 이렇듯 많은 편액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흥국사 대웅전의 단청에 관한 기록이지 싶다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어 놓은 편액

흥국사 중수(重脩)와 채화(彩畵)에 관한 기록을 적어 놓은 것 같다

 




 

흥국사를 중수할 때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적어 놓은 편액

 

 



 

대웅전 뒷편 언덕위에 위치한 만월보전(滿月寶殿)

 

 

 



불교가 미신이라 치부했던 조선조에도 왕실의 원찰(願刹)들은 궁궐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특이하게 육각형 건물인 만월보전도

궁궐 건물이 아니면 엄두를 못 낼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졌다

비록 외진 곳에 있고 천대받았던 불교 사찰이지만

왕실의 원찰이 되면 이 정도로 격이 달라진다

 




 

만월보전 안에 모셔진 하얀 불상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선정인(禪定印)은

부처가 선정에 든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결가부좌한 상이 취하는 수인(手印)이다.

삼마지인(三摩地印) 또는 삼매인(三昧印)이라고도 하며

불상의 종류에 따라 법계정인(法界定印), 등지인(等持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석가모니가 보리수아래 금강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수인인데

손바닥을 편 채로 왼손은 배꼽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오른손을 포개서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것을 말한다

 

 

 

 

 만월보전 위쪽의 넓은 터에는 탑날개가 베일 듯 날카로운 근래에 세운 듯한 탑이 있다  

 

 




탑에서 내려다 본 만월보전

육각형 건물을 받치고 있는 활주와 처마의 화려한 포작과 사모지붕위의  잡상

불교가 천시되던 조선조에 불교를 우대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와 축복을 빌기위해 화려한 치장으로 꾸민 건물이다

 




 

만월보전에서 바라 본

대웅전 기왓골과 잡상

지붕 합각면의 문양도 예사롭지가 않다

 

 




대웅전 뒤편의 석축

이곳에서도 흥국사의 오래된 내력을 읽을 수 있다

 




 

흥국사 대웅전 오른편에서 살짝 비껴있는 마당에 있었던 수조

석조부재들을 모아서 홈통을 만들고 작고 동그란 수조를 놓은 그 모양새가

물이 흐르지 않아도 시원하니 이쁘다

 

 

 



흥국사 대웅전 마당을 돌아 주차장으로 가는 길

긴 네모꼴의 대방채 초석과 단청이 아름답다

 




 

흥국사의 대방채

 

서울 근교 왕실 원찰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건축적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가람의 앞에 놓이는 대방채라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工 자형으로 생긴 이 건물은 주불전 마당 앞쪽에 놓여서 가람의 얼굴 역할을 하는데

돌출된 누마루를 양쪽 혹은 한쪽에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다용도로 쓰이는 큰 대방과 주지실 등이 갖추어져서

왕실의 중요한 시주를 접객하는 공간으로 쓰인 다목적 건물이었다고 한다

 

흥국사대방은 가장 커다란 규모에 속한다

중앙에 넓은 대방이 놓이고 그 양쪽으로는 2층의 누마루가 돌출되었다

왕실의 귀한 손님들이 내방하면 여기서 맞이했는데

귀한 신분의 불자들은

대개 일반인들이 들락거리는 법당보다는 대방채에서 불공 드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흥국사대방채는

기둥을 비롯한 모든 부재들은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고

기단과 초석도 말끔하게 다듬어져 세련된 모습을 보인다

 

 




대방채에서는

이렇게 대웅전과 그 안에 모셔진 불상을 볼 수 있다

 




 

정치의 이념을 성리학으로 삼아 불교계를 극심하게 탄압했던 조선 왕조였지만

죽음이나 왕자 생산 등 중요한 인륜 대 사 앞에서는 부처님의 가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기에

성리학이라는 유교적 이념도,고귀한 왕실의 왕족들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가르쳐준

흥국사

 

흥국사는 

하루동안 오로지 흥국사만 돌아보아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고즈넉하고 단아한  절집이었다

 

*만월보전과 대방채에 관한 내용은 김봉렬 지음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을 인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