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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묘적사 돌아보기.경기 남양주

푸른새벽* 2008. 9. 16. 13:25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강 하나 건너면 경기 남양주이다

남양주에서 찾아보고 싶었던 절집은 세 곳

봉선사,흥국사,묘적사

봉선사는 아직도 벼르기만 하고 있지만

흥국사와 묘적사는 이번참에 돌아보리라 작정을 했었다

"묘적사는 초입의 계곡이 참 좋더라"는 소리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어

흥국사를 돌아보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묘적사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대로 묘적사 초입의 계곡은 좋았다

남양주시 덕소에서 월문리를 지나 얼마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묘적사는

서울근교에선 보기 드물게 한적하고 고즈넉한 절집이었다

 

 

잘 자란 멋진 나무가 일주문을 대신해 낯선 방문객을 맞는다

 




 

서울근교에 위치한 절집이지만

멋진 계곡을 낀 아늑한 산자락에 기댄 절집이라 산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보다

템플라이프라는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템플스테이와 템플라이프는 어떻게 다른지...

 




 

일주문도 없고 금강문이나 해탈문이라 이름붙은 문도 없는 묘적사

주불전을 턱하니 막아선 돌담장의 건물이 우선 불친절하다

 

 

 



절집마당을 들어서기 전

오른편으로 보이는 게시판처럼 생긴 작은 문이 있고

그 작은 문 바로 앞에는 능묘에서나 봄 직한 문인석이 한 쌍 서 있다

묘적사와 이 문인석은 무슨 연관이 있는걸까

 




 

이 건물을 지나야 절 마당에 들어설 수 있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보이는 이 건물은 기둥과 담장이 눈길을 끈다

 




 

묘적사 대웅전과 팔각칠층석탑

단정하다

 

그러고보니 

맑고 아담한 대웅전과 팔각탑을 가리고 섰던 그 불친절했던 건물이 다시또 야속하단 생각이 든다

멋진 나무들 사이로 묘아한 묘적산에 기댄 이 대웅전과 팔각탑이 멀리서도 보인다면

묘적사의 그윽한 운치는 말로 설명을 할 수 없으리만치 대단했을터인데...

 




  

묘적사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구를 써 놓은 나무토막

하기는 고딕체로 노려보듯 써 놓은 여느절집에 비해서

묘적사의 그것은 그래도 애교스럽다

 

 




대웅전 정면으로는 오르지 말라니

이렇게 측면에서 바라볼 수 밖에

 




 

작은 절집 묘적사는 절 마당도 아담하다

아담한 절마당의 중심을 지키고 선 팔각칠층석탑

 

 




묘적사 팔각칠층석탑

이 탑은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팔각구층석탑과 양식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흔치않은 팔각다층석탑이다.

그런데 모두들 하나같이 3층과 4층 사이의 체감률이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한다

(난 아직 눈 멀어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 하는 이유인 즉

본래 탑의 높이는 7층보다 높은 9층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도 있으며
지금의 체감률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11층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라 한단다

 

그렇게 오랜세월 그자리를 지켜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면 안될까

체감률이니 어석한 모습이라느니 하는 말 달갑지 않다

 

작은 절집 묘적사

많이 알려지지 않아 모르는 이 더 많은 묘적사

그러나

이렇게 변함없이 절 마당을 지키고 있는 팔각석탑이 있어

묘적사는 든든하고 굳건하다

 

 




팔각석탑엔 풍탁이 달렸던가 보다

이렇게 탑 모서리에 풍탁을 달았던 흔적을 볼 수 있으니

 

 




팔각석탑의 기단부는

팔각의 지대석 위에 하나의 돌로 조성된 팔각의 2층 기단이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2구씩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으며,
기단석의 위와 아래에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의 연화문이 배치되어 있다.

 




 

팔각석탑의 뒷면은

이렇게 아픈 흔적이 있다

내 발길이 닿은 곳,애써 찾은 답사처에서 만났던 파손된 유물들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떨칠 수 없는 상처처럼 매번 묵직한 아픔을 느낀다

 




 

팔각석탑을 뒤로하고 대웅전 왼편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

길 한편엔 어디에 쓰였던지 모를 이런 석조유물이 놓여있다

불대좌?

탑의 기단부?

 

예외없이 경고문이 얹혀있다

오르지 말라가 아니라

앉지 말란다

 

 




묘적사 산신각

산신각으로 드는 작은 문이 특별하다

나무를 자란 그대로 껍질도 벗기지 않고 사용해서 만든 문짝이 없는 문이다

 




 

묘적사는 산신각의 대접이 특별하다

자연석을 가지런히 쌓은 담장을 둘렀고 바닥은 반들반들한 것이

내가 그동안 보아온 어느 절집에서도 이렇게 특별하게 산신각을 꾸며 놓은 곳은 없었지 싶다

묘적사가 산신각을 특별하게 꾸민 내력이 있을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전통신앙인 산신령과 묘적사는 그리 특별한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묘적사가 산신각을 특별히 꾸며 놓은 것이 아니고

이 나한전 때문이었다

자연 동굴에 인공을 가하여 만든 굴법당(窟法堂)인 나한전 내부의 중심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불상이나 불상의 광배가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을 본떠서 만든 것 같았다




 

산신각 주위에는 이렇게 뾰족하게 쌓은 돌탑이 여럿 있었다

 





 

산신각에서 계단을 내려 오는 길

처음 묘적사 절 마당에 들 때 만났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왜 이 건물의 기둥이 자꾸 눈에 거슬릴까

 

 





묘적사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이런 건물이 절 마당을 에워싸고 있는데

나름대로

자연그대로의 나뭇결을 살려 쓰려고 울퉁불퉁한 면을 다듬지 않고 기둥으로 사용한 것 같은데

왜 이리 낯설고 어색한건지...

자연과 인공이 행복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자연에 인공을 가함이 눈에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

개심사의 심검당,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이나 안성 청룡사 대웅전기둥이 그렇다

그것이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깊이와 무게 때문만은 결코아니다

 





 

묘적사의 슴슴한 풍경 하나

 




 

묘적사 절 마당을 다시 돌아나오면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언덕 위로 보이는 석조부재

언뜻

묘적사에 계셨던 고승대덕의 부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탑의 부재였다

그러고보니

대웅전 마당을 지키고 있는 팔각탑의 몸돌이나 지붕돌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묘적사팔각칠층석탑이 본래는 9층이나 11층이었을거라는 추정에 힘이 실릴 것 같다

그렇게 단정짓고 보면 이 부재가 놓였을 자리는 탑의 상륜부에 가까웠을 것터이다

아무려나

탑의 부재도 탑이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탑에서 떨어뜨려져 외따로 언덕에 방치되듯 놓여 있어도

묘적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곳에 머물것이다

그나마 고마운 일이니까

 

 





묘적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

크게 잘 자란 곧은 나무들을 배경으로 널린 빨래

빨아서 널어 놓은 빨래인지 황토염색을 마치고 건조하는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을 물기엔 충분한 풍경

 

묘적사

서울근교에 자리잡고 있지만

으리번쩍 치장요란하지 않았고

절집 사람들 눈꼬리 사납지 않았던

고즈넉하지만 야무진

묘하고 흐뭇한 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