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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근화동 당간지주(春川 槿花洞 幢竿支柱).강원 춘천 본문

☆~당간지주/고려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春川 槿花洞 幢竿支柱).강원 춘천

푸른새벽* 2008. 10. 1. 07:24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春川 槿花洞 幢竿支柱)


당간지주는 춘천시를 흐르고 있는 소양강변에서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현재 당간지주는 높은 축대위에 세워져 있으며,일대에 민가가 들어서 있다.당간지주 주변으로 나있는 도로와 제방 공사 중에 많은 기와편이 출토되기도 하였으며 석등 하대석이 발견되어 당간지주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사명(寺名)이나 구체적인 연혁은 알 수 없다.


두 지주는 전체적으로 단아한 수법을 보이고 있지만 각 면에 정자국이 많이 남아 있어 깔끔한 치석 수법은 아니다.기단은 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정연하게 마련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두 지주 사이에는 독특한 형식의 간대석이 마련되었다.간대석의 하부는 평면 사각혀이며,전후면에 각각 2구씩의 안상을 낮게 음조(陰彫)하고 그 안에 3엽의 연화문을 장식하였다.그리고 간대석의 2단은 평면 팔각형으로 면석부에 수직형 앙련문(仰蓮紋)을 새겼다.연화문은 단판(單瓣)의 연입형으로  모서리와 각 면 가운데 1엽씩 총 16엽을 배치하였다.간대석 상면에는 낮은 원좌와 원공(지름 29cm)을 마련하여 당간을 고정하도록 하였다.간대석의 원좌 규모와 원공 시공 수법으로 보아 하단부 당간의 지름이 65cm 정도 되는 대형의 당간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주부는 단순 소박한 형식으로 평면이 사각형인 길다란 석주형이다.지주는 상부로 가면서 좁아지는 모습이고,외면의 양 측면 모서리만 모를 깎아 부드럽게 치석하였다.정상부는 평평하다가 바깥쪽으로 나가면서 부드럽게 호형을 이루도록 하였다.그런데 서쪽지주는 동쪽지주와 달리 정상부에서 외면으로 이어지는 호형이 더 밑에까지 다듬어져 있으며 지주부의 너비와 폭도 동쪽지주보다 크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당간지주가 건립된 이후 어떤 이유로 파손내지 결실되자 어느 쪽 지주를 새롭게 세운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을 알 수 없다.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사각형으로 길쭉하게 시공하여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아직까지 당간지주의 소속 사찰은 알려진 것이 없지만 사찰이 북한강변에서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아 원(院)의 기능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당간지주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점에 충원사지(沖圓寺址)가 있다.이곳에서는 자기편과 적심석 등이 출토 되었으며,현재 고려시대 건립된 칠층석탑이 남아 있다.그리고 당간지주가 위치한 북한강변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계성사(啓星寺),청평사(淸平寺),서상리와 월송리 삼층석탑이 소속된 사찰,흥국사 삼층석탑 등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사찰이 있었다.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규모가 큰 편으로 군데군데 정자국이 남아있고 각 면을 고르게 다듬지 않았다.그리고 지주부의 너비와 폭이 전체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커서 둔중한 이미지를 주는 등 전체적인 수법이 홍천 희망리 당간지주와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한편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고려시대 건립된 다수의 사찰이 있었으며 당간지주의 치석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의 간대석은 보기 드문 형식으로 돋보이는 수법이다.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는 보물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春川 槿花洞 幢竿支柱)

 

보물 제76호 
강원 춘천시 근화동 793-1


춘천 근화동 의암호 바로 곁에 듬직한 당간지주 한 쌍이 서 있다 .예전에는 이 일대에 꽤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절을 자취도 없고 당간지주만 옛 절터 그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온전히 보존돼오고 있다.안팎 면에 꾸밈새라곤 전혀 없이 소박한 모습의 간결한 지주가 2단의 높직한 기단 위에 서 있는데,각 변의 모서리를 약간씩 누그려뜨려 장식의 장을 보이고 있다.꼭대기쯤에서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내려오며 활 모양의 선을 그리고 있는데 바깥쪽에서 보면 확연치 않으나 앞쪽 혹은 뒤에서 보면 꼭대기 부분 바깥쪽 4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원 모양의 선이 어렴풋이 보인다.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동서로 마주보며 서 있는 지주 한쪽 윗부분에만 장방형의 구멍을 내어 장식하였다.


당간은 근래에 시멘트와 잡석으로 기단을 보수하여 본래의 구조는 알 수 없다.다만 두 지주 사이의 바닥에 당간을 받고 있던 간대석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다소의 원형 추정은 가능하다.상하 2단으로 마련된 방형의 간대석은 여간 예쁘지 않다.네모진 아랫단의 앞뒷면에 선명한 조각의 안상을 새기고  8각의 윗단에는 바깥면을 향해 연꽃을 돌려 피게 한 수법이 고려시대 중기의 양식으로 추정하게 한다.그 중심에 둥근 홈을 파 당간을 고정시키게 했는데,철당간을 꼽았을 화강암 간대석은 녹물이 배여들어 연잎을 붉게 피워내고 있다.


당간지주 옆에는 절터에서 발굴되었을,복련을 예쁘게 두른 석물이 놓여 있어 석등의 대석쯤으로 짐작하게 하고,이 절이 어떤 절이었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소박한 멋을 풍기는 당간지주만 묵묵히 툭 트인 의암호를 응시하고 있다.
높이가 3.52M이고,보물 제76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