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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미륵리사지 당간지주(彌勒里寺址 幢竿支柱).충북 충주 본문

☆~당간지주/고려

충주 미륵리사지 당간지주(彌勒里寺址 幢竿支柱).충북 충주

푸른새벽* 2008. 10. 3. 07:29

 

 

 

 

 

 

 

 

 

 

 

 

 

 

 

 

 

 

 

 

 

 

 

 

 

 

 

 

 

 

 

 

 

 

 

 

 

 

 

 

 

 

 

 

 

 

 

 

 

 

 

 

 

 

 

 

 

 

 

 

 

 

 

 미륵리사지 당간지주(彌勒里寺址 幢竿支柱)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6


미륵리사지 당간지주는 현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넘어져 있다.두 지주 중 1주는 1976년 사지(寺址) 정비 작업 중 발견되었고 다른 1주와 간대석은 미륵리사지 1차 발굴 시에 노출되었다.간대석은 긴 사각형의 큰 돌을 대강 치석하여 상면 중앙에 이중의 원좌가 그 가운데에 사각형 구멍(1변 16cm,깊이 7cm)을 시공하였다.이러한 간대석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상주 복룡동.중초사지.용두사지.홍성 동문동 당간지주 등에서도 볼 수 있다.이외에도 당간지주의 간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남아 있다.그러나 사찰의 입지 조건과 석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미륵리사지에 2기의 당간지주가 세워졌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또한 간대석으로 추정되는 두개의 석재가 전혀 다른 수법을 보이고 있는 점도 의문점이다.따라서 치석 수법이 당간지주에 활용된 간대석과 유사하지만 다른 용도에 사용되었던 석재로 보인다.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간이나 지주가 파손되자 보수나 중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간대석을 보강하여 끼웠을 가능성은 있다.


당간지주는 석불과 사지의 방향으로 보아 원래는 입구에 동서로 마주 서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두 지주는 동일한 치석 수법으로 하단부가 절단되어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지만 지주부의 너비와 폭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높고 웅장한 지주였을 것으로 보인다.외면 외곽 모서리는 각을 부드럽게 깎았으며 지주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다.그리고 지주 정상부 호선을 그리는 부분에만 높게 돋을새김한 세로띠를 양각하였다.특히 지주 외면에서 주목되는 장식 수법은 연화문을 조식하였다는 점이다.연화문은 6엽으로 큼직한 선문대(線紋帶)를 돌리고 ,연판은 둥글게 조각하였다.연화문은 지주면에서 5~6cm 높이로 높게 돋을새김하였다.연판 사이에는 간엽이 있고,간엽의 끝부분은 살짝 들어올려 반전(反轉)이 되었다.당간을 고정하는 간은 지주 내면 꼭대기에 간구를 시공하여 고정하였으며 간공의 시공 여부는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이와 같이 지주부에 연화문을 조식한 예는 통일신라시대의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와 고려시대의 고창 흥덕 당간지주에서 볼 수 있다.지주 외면에 연화문을 장식한 당간지주는 처음에 경주 지역에 건립되었다.당간지주가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듯이,미륵리사지 당간지주의 외면에 연화문을 장식한 수법은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의 영향으로 보인다.한편 미륵리사지 주변에는 월광사지(月光寺址),덕주사(德周寺),사자빈신사지(獅子頻迅寺址) 등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찰들이 있었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미륵리사지 당간지주는 지주부의 치석 수법,연화문 기법,사지에 남아있는 각종 유물 등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또한 둔중한 인상을 주는 지주부의 양식도 고려 전기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특히 이 당간지주는 미륵리사지에 남아있는 오층석탑이나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