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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철당간(法住寺 鐵幢竿).충북 보은 본문

☆~당간지주/고려

법주사 철당간(法住寺 鐵幢竿).충북 보은

푸른새벽* 2008. 10. 12. 20:47

































 

법주사 철당간(法住寺 鐵幢竿)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법주사 당간지주는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 왼편 입구에 웅장하게 우뚝 서있다.현재 기단부는 지면보다 약 50cm 낮은 곳에 지대석을 깔고,긴 사각형 4매의 돌을 결구하여 구성하였다.기단부는 면석부에 안상과 같은 특별한 장식 없이 소박하게 마련하였다.두 지주와 간대석은 기단 상면에 긴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그리고 간대석은 기단 상면과 같은 높이에 사각형 대석을 두 지주 사이에 끼워 마련하였다.간대석 상면에는 원좌(지름 79cm)를 마련하여 철당간을 받치도록 하였다.하단부 철당간을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하여 원공을 시공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평면 사각형 석주형(石柱形)으로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도록  치석 하였다.현재 동쪽지주 상단부 남쪽 부분은 파손되어 시멘트로 땜질하여 놓았다.그리고 지주 외면 중앙부에는 반원형으로 높게 돌기된 세로띠(너비 7cm)를 장식하였다.지주 외곽 모서리는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좁게 깎았다.지주부는 전체적으로 각 면 모서리를 각지게 치석하여 강직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당간은 현재 30단의 철통을 연결하여 세웠는데,전체 높이가 22m에 이른다.당간은 철통 이음 부문에 철띠를 돌려 연결하였으며,밑에서 6번째 철통 중간부에 원형 철띠를 돌리고 간(杆)이 철토을 감아 돌아 간구(杆溝)로 연결되도록 하였다.이러한 연결 수법은 갑사 철당간과 동일하다.당간의 정상부는 당을 걸기 위한 특별한 장식이나 장치는 없으며,복원 시 철당간을 새롭게 세운다는 것에 의의를 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최초 건립 시에는 당을 걸기 위한 특별한 시설이 있었을 것이다.현재 당간의 첫 번째 철통(지름 55cm,높이 74cm)의 남쪽 면과 북쪽 면에 복원하면서 새긴 양각의 명문이 있다.


이와 같이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건립된 당간지주들처럼 소박한 치석 수법을 보인다.그런데 지주 외면 중앙에 높은 세로띠를 장식한 점은 천흥사지.홍성 동문동 당간지주 등 법주사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이들은 고려 전기에 건립된 당간지주로 지주부의 양식이 단순하면서 웅장한 인상을 준다.


한편 법주사 철당간과 당간지주는 1006년(목종 9)에 건립되었음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법주사 철당간은 최초 건립시 962년 건립된 용두사지 철당간처럼 철당에 명문을 새겼다.또한 처음 건립할 때 구리와 철로 주조되었으며,그 높이가 50척이었다고 한다.당시 용두사와 법주사가 청주를 중심한 지역에서는 대찰이었던 것으로 보아 법주사 철당단은 이미 건립되어 있었던 용두사지 철당간을 참고하여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두 철당간은 당간의 연결 방법이다 꼭대기의 구조물이 동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이후 법주사 철당간은 1866년(고종 3) 대원군의 명으로 용화전(龍華殿)에 봉안된 미륵불상과 함께 무너뜨려 당백전(當百錢)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그 후 1907년 철당간을 재건하였으며,이후에도 여러 차례 손상을 입어 1927년과 1954년에 복원하였다.현재의 상태는 1970년 피해를 입어 1972년 12월 대대적인 보수를 하면서 복원하여 세워놓은 것이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