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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

푸른새벽* 2008. 12. 24. 22:39

 

 

 

 

 

 

 

 

 

 

 

 

 

 

 

 

 

청룡사 보각국사 부도 앞 사자석등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한 장명등이다
조선시대 초기의 배치 방법대로 부도.부도비와 더불어 한 줄로 놓여 있다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방형등(方型燈) 형태이며 하대석을 사자상으로 대신하였으므로
사자석등이라 불린다


현재 상륜부를 제외한 모든 부재가 온전하다
지대석과 간주석,상대석,화사석,지붕돌이 모두 네모꼴이며 각각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지대석 윗면의 오목하게 패인 곳에서 사자 한 마리가 거북이처럼 엎드려 하대석 구실을 한다
두꺼비처럼 불거진 눈과 코,입술 밖으로 드러난 송곳니,마디가 툭툭 불거진 앞발,
탄탄한 엉덩이 등 사자의 모습은 매우 힘차게 표현되었다
사자의 등에는 안장 모양으로 좌우로 늘어뜨려진 장식이 조각되었고
그 위에 네모꼴 받침을 한 단 둔 후 나지막한 간주석을 얹었다


간주석 네 면에는 안상이 두겹 선으로 새겨졌고
그안에 삼각형을 이루는 동그란 무늬 세 개와 그 주변의 불꽃무늬가 선각되었다
상대석은 아랫부분에 각진 받침을 한 단 둔 후 연꽃잎 여덟 장을 돌렸고
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다
화사석에는 앞뒤 두 군데에만 화창이 뚫렸고 네 모서리에 둥근 기둥이 조각되었다
화창 아랫부분에 창벽이 없는 점이 독특하다
지붕돌은 아랫부분에 각진 받침이 한 단 있고
조금씩 들려올라간 처마 네 귀퉁이에 서까래 모양이 표현되었다
지붕돌 윗면은 완만하게 흘러내려 마치 두툼한 방석이나 잘 부푼 빵 같은 모습이며
합각 용마루도 두툼하여 고려시대 지붕돌 양식을 잘 보여준다
지붕돌 위에 한 개의 둥근 돌에 복련과 구슬무늬 띠,
구름무늬를 넣은 꽃잎과 보주를 새긴 상륜부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이 사자석등은 부도 및 부도비와 함께 태조 3년(1394)에 세워졌으며
높이 2m이고 보물 제65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

보물  제656호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청룡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고, 현재 절의 옛모습을 짐작해 볼 방법이 없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서 있을 뿐이며, 현재의 청룡사는 옛터의 북쪽에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사자의 등에 얹어진 가운데받침은 기둥모양으로 4각의 낮은 돌을 두었다. 화사석은 4각으로, 네 모서리를 둥근기둥처럼 조각하였고, 앞뒤로 2개의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을 돌출되게 조각해 놓았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네 모서리선이 두터워 고려시대의 지붕돌 양식을 잘 보여준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미루어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