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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철당간(七長寺 鐵幢竿).경기 안성 본문

☆~당간지주/고려

안성 칠장사 철당간(七長寺 鐵幢竿).경기 안성

푸른새벽* 2009. 1. 14. 09:37

 

 









 

 





 









 

 





 

 칠장사 철당간(七長寺 鐵幢竿)


칠장사 철당간은 칠장사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공간에 위치하고 있다.칠장사 입구에 배치하여 가람의 위상을 드러내고,멀리서도 잘 보이는 곳에 위치시켜 표상의 역할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현재의 상태는 오랜 세월 방치로 인해 기단부가 흙에 덮이고,당간도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던 것을 1981년 보수한 상태이다.


당간지주의 기단부는 매몰되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판석 석재를 결구하여 기단(238x178cm)을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지대석은 3매의 판석형 석재를 바닥에 동서로 깔아 마련하였는데,가운데 지대석은 간대(竿臺) 역할을 겸하고 있다.두 지주는 지대석 상면 가운데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간대석은 당간이 놓여있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철통을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하여 원좌와 원공을 시공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있는데,전체적으로 소박한 치석 수법의 당간지주이다.지주부는 평면 사각 석주형으로 각 면을 고르게 치석하였으며,외곽 모서리를 깎지 않고 직각으로 처리하였다.지주 내면에 간공은 시공하지 않았으며,꼭대기에 간구를 시공하여 당간을 고정하는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당간은 현재 철통(鐵筒) 15단이 연결되어 있다.그런데 원래는 30단으로 지금보다 2배 가까운 높이로 당간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철통은 상부로 올라가면서 지름이 좁아지도록 주조하였으며,제일 하단부 철통은 높이가 67cm,지름이 49cm이다.철통은 하부에 철띠를 마련하고 위에서 아래로 끼워 연결하였다.즉,각 철통의 상부에 끼움촉을 마련하여 서로 소켓식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연결 부위에는 철띠(두께 6.5cm)를 돌려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하였다.이러한 철통의 연결 방법은 용두사지 철당간과는 약간 다르며,갑사 철당간과 상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칠장사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고,지주부의 너비와 폭도 다른 지주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그리고 각 면을 고르게 치석하였지만 장식적인 의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즉,간략화의 경향이 보이는 지주부의 치석과 기단 결구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특히 칠장사가 혜소국사 정현((慧炤國師 鼎賢, 972~1054)이 주석하면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1014년경에 크게 중창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철당간과 당간지주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칠장사 철당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39호이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칠장사 철당간(七長寺 鐵幢竿)

 

시도유형문화재 제39호 (안성시)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801-1


총 높이 11.5m로 15마디의 원통형 철통이 연결되어 있으며, 아래부분은 화강암으로 된 좌 ·우 기둥이 버티고 있다. 흙으로 덮여 잘 드러나지 않는 바닥은 네모난 구멍을 마련하여 당간을 꽂았다.


양쪽 기둥은 조각이 없는 소박한 형태로 끝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철당간은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줄어들고 각 이음새부분은 마치 대나무마디처럼 형성되어 있다. 원래는 원통모양의 철통이 30마디를 이루었다고 하며, 칠장사의 지형이 배(舟)모양과 같아 돛대의 역할을 하도록 이 당간지주를 세웠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칠장사 외에는 청주용두사지와 공주갑사에서만 당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매우 희귀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