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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숭선사지 당간지주(崇善寺址 幢竿支柱).충북 충주 본문

☆~당간지주/고려

충주 숭선사지 당간지주(崇善寺址 幢竿支柱).충북 충주

푸른새벽* 2009. 1. 17. 09:09

 

 





 





 









 

 





 





 





 





 





 

 숭선사지 당간지주(崇善寺址 幢竿支柱)

 

충주시 문화재자료 제43호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601

 

숭선사지 당간지주는 숭선마을 한 가운데에 서 있으며 숭선사지로 올라가는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현재 서쪽 지주만 남아있는데,동쪽지주는 일제강점기 저수지 공사시 교량에 사용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이 일대에서는 기와편과 초석이 널려 있어 절터임을 알 수 있었고 1981년에 명문 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숭선사임이 확인되었다.기록과 최근 발굴 조사에 의하면 숭선사는 954년(광종 5)에 창건되었으며 1182년(명종 12)에 중수되었고 조선후기까지 꾸준하게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간지주의 기단은 결실된 상태이다.다만 지주부와 간대석의 하단부가 지면에서 70cm정도 치석이 고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 묻혔거나 기단부와 결구된 흔적으로 보인다.간대석(90x65cm)은 큰 사각형 대석(臺石)으로 별다른 조식은 없으나 상면에 특이한 형태의 사각형 구멍을 남북으로 33cm 간격을 두고 2개 시공하였다.한 변이 17cm인 정사각형으로 깊이는 5cm정도인데 이것은 당간 하단부를 이중으로 세워 당간을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현재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것에 의하면 북한의 불일사지 당간지주와 동일한 간대석 수법이다.따라서 두개의 당간지주가 비슷한 시기에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석공들에 의하여 치석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간대석 각 측면에 정으로 돌을 치석하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자국으로 보아 당간지주는 지름이 2cm 정도인 정을 사용하여 치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간대석의 당간 받침 시설로 보아 숭선사에는 목당간(木幢竿)이나 석당간(石幢竿)이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주부는 각 면에 별다른 조식은 없지만 규모가 커서 웅장하면서도 단순한 인상을 주고 있다.다만 외면 외곽 모서리를 부드럽게 깎았으며,정상부는 평평하다가 약하게 호선을 이루고 있다.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은 간구와 간공을 마련하여 고정하였다.간공(8x12cm,깊이 16cm)은 지주 내면에 사각형으로 관통되지 않게 시공하였다.간구(31x19cm,깊이 14cm)는 내면 꼭대기에 '凹'형으로 크게 시공하였다.간공과 간구는 지주 규모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


이와 같이 숭선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수법이 일부 적용되어 웅장하면서 둔중한 인상을 주고 있어 고려시대적인 치석 수법을 다분히 보이고 있다.따라서 당간지주는 954년 숭선사가 창건되고,가람이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간 시기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사실은 숭선사지 발굴 조사에서 출토되는 유물들과 숭선사 창건 기록이 방증하고 있다.또한 숭선사지에서 출토된 석조물들이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당간지주도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전체적인 가람이 조영(造營)되면서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