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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객사리 석당간(潭陽 客舍里 石幢竿).전남 담양 본문

☆~당간지주/고려

담양 객사리 석당간(潭陽 客舍里 石幢竿).전남 담양

푸른새벽* 2009. 1. 28. 08:19














































































 담양읍석당간(潭陽邑石幢竿)


석당간의 소속 사찰은 현재 논으로 변하였으며 오층석탑이 국도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따라서 오층석탑은 석당간과 같은 사찰의 유물임을 알 수 있다.현재 석탑과 당간지주가 남아있는 읍내리사지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굴 조사 시 지방관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가 발견되었다.또한 사지(寺址)가 주요 교통로 상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사(寺)와 원(院)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던 곳으로 추정된다.그리고 발굴 조사에 의하여 당간지주 소속 사찰은 적어도 통일신라 말기에 창건되어 18세기경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담양읍석당간과 당간지주는 기단부가 매몰되어 있어 구체적인 양상을 알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정연한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다.지대석은 평면이 사각형으로 원래는 2매의 판석형(板石形) 석재를 결구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5편으로 조각났다.지대석 상면에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두 지주와 간대석을 끼워 고정하도록 하였다.현재 두 지주와 석당간 사이는 시멘트로 채워져 있는데 원래는 간구와 간공에 간(杆)을 끼워 고정하였을 것이다.간대석은 두 지주 사이에 사각형 대석으로 마련하였으며,석당간의 하단부는 간대석 상면에 고정토록 하였다.석당간은 간대석 상면에 마련된 홈이나 돌기대에 견고하게 끼웠을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남북으로 마주 서 있는데,일부 파손되기는 하였지만 동일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지주부의 전후면과 외면은 외곽에 윤곽대(너비 10~11cm)를 돌렸으며 외면 중앙에는 가운데가 굵은 3조의 돌기대를 세로로 장식하였다.정상부는 첨형(尖形)으로 다듬었으며 지주 내면에는 간구를 시공하였는데,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여러 번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간구와 동일한 높이의 석당간에 사각형의 관통된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초에는 간구와 관통된 석당간의 구멍에 간을 끼워 당간을 고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북쪽지주는 중간 부분에 사각형의 관통된 간공을 시공하였다.따라서 지주와 석당간 사이에 시멘트로 채워져 있지만 서쪽지주도 동쪽지주와 동일한 높이에 간공이 시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간은 하부에는 평면이 팔각인 지주형 석주(石柱) 3매를 연결하여 세우고,그 위로는 6개의 철통을 올렸다.따라서 석당간과 철당간이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통일신라나 고려시대 조성된 당간의 재료가 돌.나무.철 등이 각각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혼용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현재 부안 서외리나 영광 단주리 등 상당한 높이까지 남아있는 석당간의 경우 상단부에 철당간이나 목당간이 연결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담양읍석당간의 평면은 정팔각형으로 연결 방법은 당간 상하부를 각각 반절로 절단한 다음 상하부 연접 부분에 각각 1개씩 2개의 철띠를 두르고 그 사이에 2개의 둥근 구멍을 관통시켜 그 구멍으로 고정쇠를 끼워 고정시키는 방식이다.이러한 방법으로 3개의 석당간을 같은 방향에서 연결하여 세우고 상단부 석당간 위로는 6단의 철통을 끼워 당간을 세웠다.석당간의 연결 방법이 부안 서외리나 나주 동문외 석당간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특히 당간부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상부 시설물이다.먼저 보륜과 같이 원형으로 된 이중의 철띠를 돌리고,외곽 철띠에 방울과 같은 장식물을 달았다.보륜형 철띠 위로는 둥근 보주형의 2중 받침을 두고,삼지창과 같은 예리한 철침이 솟아 있다.


그리고 당간부에서 석당간은 최초에 활용되었던 부재일 가능성이 높다.왜냐하면 간대석과 석당간 하단부의 평면이 잘 어울리고 있으며 동시에 석당간의 너비가 두 지주의 상대 간격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두 지주의 간구와 같은 높이에 관통된 구멍이 시공되어 있어 간을 끼웠던 곳임을 알 수 있고 석당간이 상단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등 정연한 치석과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담양읍석당간은 지주 외곽 장식과 치석 수법에서 고려 전기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상통하고 있다.특히 당간지주는 읍내리 사지가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과 동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읍내리사지는 발굴 조사에 의하면 900년대 후반경에 대대적인 중창이나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따라서 담양읍석당간의 최초 건립도 오층석탑과 함께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이후 두 지주와 당간부는 여러 번 보수가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당간지주와 석당간은 최초 건립 시 활용되었던 부재이며  철당간은 새롭게 추가되거나 예전의 모습을 모방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당간지주 바로 옆에는 석비가 있는데 비문에 의하면 당간이 1794년 큰 바람으로 무너지자 헌종 5년(1839) 3월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그러나 당시 어느 부분을 어떻게 중건하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다만 현재 상태로 보아 당간부가 중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담양읍석당간은 언제부터인가 담양의 풍수지리와 관련되어 이해되고 있다.그러나 원래는 사찰 가람 상에서 중요한 기능과 상징성을 가졌던 당간이었는데 사찰이 완전히 폐사된 후 당간이 풍수지리사상과 연결되면서 그 기능이 변하여 풍수적인 대상으로 인식이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사찰이 폐사된 이유도 있지만 읍내리 사지(寺址)가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비교적 가까운 곳에 풍수적 성격이 짙은 나주 동문외 석당간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담양 객사리 석당간(潭陽 客舍里 石幢竿)


보물 제505호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45 

 

담양읍 석당간은 담양읍에서 순창행 도로를 따라 1㎞쯤 가다보면 논 한가운데에 높게 서 있다.


연꽃잎이 새겨진 돌 위에 당간을 세우고 양 옆에 기둥을 세워 지탱하고 있다. 당간은 가늘고 긴 8각 돌기둥 3개를 연결하고 연결부위에 철띠를 둘렀다. 꼭대기에는 쇠로 만든 둥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있는데 풍경같은 장식물이 달려있고 위에는 철침이 솟아있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석비(石碑)의 내용으로 미루어, 현재의 이 석당간은 조선 헌종 5년(1839)에 중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