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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보성 벌교홍교(筏橋虹橋).전남 보성 본문

☆~ 풍경소리/전 남

보성 벌교홍교(筏橋虹橋).전남 보성

푸른새벽* 2009. 5. 18. 21:31

 

 

 

 

 

 

 

 

 

 

 

 

 

 

 

 

 

 벌교홍교(筏橋虹橋)


벌교는 보성군의 동남쪽 끝에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곧 고흥반도이고 동쪽 순천만의 한 끝이 읍내의 벌교천 하구에 닿아 있다
벌교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세 칸 무지개 다리를 말한다
전체 길이 27m에 높이는 약 3m,폭은 4.5m이며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 승려인 초안(楚安)과 습성(習性)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선암사에는 숙종 때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승선교가 있으니 벌교 홍교를 만드는 데 선암사 홍교가 참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리를 놓아 모든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한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은 불교에서 중요하게 꼽는 보시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예전 승려들 가운데는 다리 축조 기술자가 많았는데
절뿐 아니라 민간 지역의 다리 가운데도 승려가 놓았다는 것이 여러 개 남아 있다


벌교(筏橋)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홍교가 놓이기 전에 이곳에는 주민들이 뗏목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는데
걸핏하면 다리가 떠내려가서 불편이 많았다고 한다
홍교는 만들어진 지 8년 만인 영조 13년(1737)에 중수되었고

헌종 10년(1844)에 크게 개수되었으며 1984년에 마지막으로 중수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리를 중수할 때마다 세운 기념비들이 읍내 쪽 다리 끝에 죽 서 있다


다리의 구조는 부채꼴 모양의 석재를 맞춰 홍예를 만들고 네모나게 가공한 석재로 홍예 사이의 면석을 쌓았으며
그 위에 밖으로 튀어나오게 멍엣돌을 걸치고 난간석을 얹은 후 판석을 깔아 다리 바닥을 만들었다
홍예를 제외하고 각 홍예 사이의 면석과 축조 방식은 여러 차례 중수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과 요즘 다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특히 면석 부분이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반듯반듯하게 가공한 돌이 아니라 막돌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홍예마다 아래쪽 가운데에 이무기돌이 박혀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처럼 다리 천장이나 멍엣돌 마구리 등에 동물이나 도깨비의 모양을 새겨 놓는 것은 재앙이나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옛날에는 벌교 홍교의 이무기돌 코끝에 풍경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원래 맞은편 강언덕까지 다리가 계속되어 있었는데 손상된 것인지,처음부터 그만했던 것인지는 지금 단언할 수 없지만
세 홍예중에서 가운데 것이 양쪽 것보다 높은 점으로 보아 현재보다 대단히 길었다고 추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다리는 지금도 실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홍교에 덧이어 콘크리트 다리가 붙어 있다
다리 밑에 가끔 백로가 지나가고 다리 위로는 자전거를 탄 학생이나 아이를 업은 엄마,장난으로 실낚시를 하는 아이들도 왔다갔다 하는데
옛 다리에 요즘 생활이 잘 어울려서 보기가 좋다
벌교 사람들은 60년마다 한 번씩 이 다리에서 환갑잔치를 해주었는데 1959년에 6주갑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보성 벌교 홍교(寶城 筏橋 虹橋)


보물  제304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154-1 


홍교란 다리 밑이 무지개같이 반원형이 되도록 쌓은 다리를 말하며, 아치교·홍예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이 다리는 현재 남아 있는 홍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현재도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자리에 뗏목을 이은 다리가 있어 벌교(筏橋)라는 지명이 생겨났으며, 조선 영조 5년(1729)에 선암사의 한 스님이 돌다리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후 영조 13년(1737) 다리를 고치면서, 3칸의 무지개다리로 만들어졌고, 1981∼1984년까지의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지개 모양을 한 다리밑의 천장 한 가운데 마다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아래를 향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물과 용의 관계에서 오는 민간신앙의 표현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 용의 코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소리가 울려퍼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다리가 놓여진 강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원래 다리의 규모는 폭 4m, 길이 80m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이며, 이 다리를 위해 주민들이 60년 마다 회갑잔치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화려하고 거대한 모습 속에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며, 웅대함과 함께 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

 

 

↓아래의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온 복원되기 전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