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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淸州 飛中里 石造如來三尊像 및 石造如來立像).충북 청주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淸州 飛中里 石造如來三尊像 및 石造如來立像).충북 청주

푸른새벽* 2009. 7. 20. 19:54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淸州 飛中里 石造如來三尊像 및 石造如來立像)

청주시 내수읍 비중리 '선돌거리'에 있는 삼국시대 불상이다.선돌거리에는 오래전에 절이 있었는데 이름이나 내력을 알 수 없어서 동네 이름을 따라 '비중리절터'라 불려왔다.절터로 추정되는 곳은 모두 밭이 되거나 집이 들어서서 건물이 흔적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을 입구 정자나무 주변에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고 일광삼존불과 석불입상,광배 하나가 수습되어 있을 뿐이다.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당산처럼 느껴지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바위덩이,자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불상들은 그 위에 세워져 있다.원래 더 아래쪽 밭둑에 있었으나 1994년 무렵 이곳으로 끌어올려졌고 1997년에는 보호각이 세워졌다

일광삼존불은 하나의 광배 안에 불상 세 구를 함께 조각한 것이다.원래 가운데에 본존불이 앉아 있고 양옆에 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었는데 네 조각으로 깨어져 본존의 머리 부분과 좌우협시보살이 떨어져 나갔다.그러나 아직 찾지 못한 좌협시보살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자리에 맞춰놓았으므로 본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결가부좌하고 앉았으며 옷자락이 무릎을 덮고 대좌까지 흘러내렸다.얼굴과 왼쪽 어깨,가슴 부분이 뚝뚝 깨져나가고 오른쪽 무릎도 벗겨지는 등 손상이 심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부드럽다.어깨가 동그스름하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둘째손가락을 구부린 채 시무외인을 지었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얹은 모습이지만 잘 알아볼 수 없다.각지지 않은 어깨나 무릎 아래로 옷자락을 늘어뜨린 모습 등이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시대의 납석제 여래좌상과 많이 닮았고 6세기 초반 중국 불상양식과도 닮은 점이 있다.어깨부분이 심하게 손상되어서 법의의 형태는 불분명하다.넓은 무릎을 덮은 옷자락이 여러겹으로 U자를 그리며 아래쪽으로 흘러내렸고 그 아래에 삼존불상이,양쪽에 사자가 한 마리씩 새겨졌으나 심하게 닳았다.두광과 신광은 둥근 무늬를 몇겹 새겨 물결 모양으로 표현했고 좌우에 5구씩, 모두 10구의 화불이 조각되어 있다.본존불의 높이는 1.22m 무릎너비는 0.86m이다

남아 있는 우협시보살도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원통형 몸,몸 앞에서 X자로 엇갈리는 옷주름,중첩된 광배의 형태 등에서 6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오랫동안 동네사람들만 알던 이 일광삼존불상은 1978년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이 삼국시대인 6세기 중엽 조성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으나 당시 이 지역이 삼국이 번갈아 드나들던 각축장이었던 만큼 어느 나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비중리일광삼존불은 원형을 많이 잃기는 했으나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처음으로 조사된 석조일광삼존불이며 청주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4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 중에서*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淸州 飛中里 石造如來三尊像 및 石造如來立像)

보물

충북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 207-1 


충청북도 청원군 비중리에 있는 석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광배(光背)와 삼존불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4부분으로 조각나 있던 것을 복원한 것인데, 왼쪽의 협시보살은 없어졌다. 이 지역은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절터였음이 밝혀졌다.


본존불은 턱과 타원형의 상체, 양 무릎이 정삼각형으로 연결되는 안정된 자세로 앉아있다. 손은 큼직하게 표현되었으며, U자형의 주름이 새겨진 옷자락은 무릎을 덮으며 좌우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러한 불상양식은 백제불상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협시보살 역시 머리칼, 상체의 장식성, X자형의 옷주름 등에서 6세기 초의 불상양식을 보여준다.


이 불상은 발견된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6세기 전반기는 고구려가 점령하였으며, 후반기는 신라의 영토였기 때문에 국적을 판별할 수 없다. 그러나 불상의 형식이나 양식상으로 볼 때 6세기 중엽 내지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