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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전남 영암 본문

☆~ 절집.절터/전 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전남 영암

푸른새벽* 2009. 9. 15. 12:23

  

 











 






 

 











 






 

 











 

 











 






 

 











 






 






 

 






 






 











 

 











 






 






 






 

 











 

 






 

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산8번지


전하는 말에 따르면,도갑사 자리에는 먼저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어린 시절을 문수사에서 보낸 도선국사가 나중에 그 터에 절을 다시 지은 후 도갑사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고려 때 크게 번창하여 전성기를 누렸다고 하며,조선 세조 3년(1457) 수미(守眉)대사와 신미(信眉)대사가 중건했다.성종 4년(1473)에 중수한 적이 있고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영조 52년(1776)에 다시 중수했다.근래에도 한국전쟁과 실화 등으로 여러 차례 화재를 입었다.현재의 대웅전은198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지금은 해남 대흥사의 말사이며 경내에 해탈문을 비롯하여 대웅전,명부전,미륵전과 요사채 등 건물이 있고 수미왕사비와 도선수미비,석조여래좌상,오층석탑과 석조 등이 있다.


새로 지은 일주문을 지나 숲 사이 너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에 길에서 직각으로 틀고 앉은 해탈문이 있다.도갑사 안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인데 신라 시대의 승려인 통고(通高)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1960년 해체 수리를 할 때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지금의 건물은 세조 3년(1457)에 수미와 신미 대사의 발원으로 중건되어 성종 4년(1473)에 완공되었다.기본적으로는 주심포 집이지만 다포 집의 양식이 가미된 특이한 건물로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해탈문은 원래 사천왕문이었겠지만 지금은 좌우 앞쪽 칸에 금강역사상이 모셔져 있다.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기단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후대에 넓혀진 것으로 추정된다.계단 난간머리에 새겨진 태극무늬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만다라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절 마당이다.아담한 고려 시대 오층석탑과 새로 만든 석등을 앞세운 대웅전이 정면에 있고 오른편에는 커다란 통나무 배모양의 석조가 있으며 마당 귀퉁이에 수미왕사비가 있다.동선을 따라 잔잔하게 다져진 돌바닥이 깔리고 군데군데 나무가 선 도갑사 마당은 조용히 걸어 다니고 싶게 조촐하고 한적하다.'강희 21년 임술'(조선 숙종 8년,1682)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석조에는 늘 맑은 물이 넘친다.


수미왕사비는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이 기록된 비이다.비문에 따르면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 때의 승려로 13세에 도갑사에서 출가했다.그후 법주사 등으로 다니며 경전 공부를 하다가 도갑사로 돌아와 황폐한 절을 중창했고 불경 언해 기구인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세조는 그에게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했다.


이 비는 귀부와 비신과 이수가 모두 잘 남아 있는데 총높이가 3.35m이고 비석의 높이만 2m이다.인조 7년(1629)에 만들기 시작하여 인조 11년(1633)에 세워진 비인데 그 양식 수법이 고려 전기에 유행하던 것과 비슷한 점이 특이하다.


절 마당을 벗어나 대웅전 왼편 뒤로 들어가면 월출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이다.산길을 조금 따르는 듯하다가 곧 계곡물을 건너 맞은 편 비탈길로 오르면 미륵전이 있다.집 이름은 미륵전이지만 안에는 돌로 된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얼굴이나 몸에서나 별다른 표정이라든가 생동감은 느낄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의젓함을 지닌 불상으로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보물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전에서 내려온 후 계곡을 따라 좀더 산 쪽으로 들어가면 왼쪽 널찍한 터에 도선수미비가 있다.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전체 높이가 4.8m에 이른다.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얼핏 보면 요즘 새로 세웠다 할 만큼 말끔하다.이 비석이 완성된 것은 효종 4년(1653)이었지만 만드는데 1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