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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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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雜想/일상의 소소함

김치

푸른새벽* 2009. 10. 8. 11:28

 

오늘 배추김치와 국물 뽀얀 물김치를 담았다

김치담그는 것이야 대한민국의 주부라면 누구나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뽀얀 물김치나 얼갈이 물김치 담을 때를 제외하고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김치를 담을 때면 언제나 빼놓지 않은 것이 있다

젓갈이나 고춧가루는 기본이고 그 밖의 부재료는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고춧가루와 젓갈 말고도 꼭 챙기는 것은

통통한 붉은 고추 그러니까 말리지 않은 붉은 생고추를 갈아서 쓴다는 것이다

아무리 양질의 고춧가루를 쓰더라도 이 붉은 고추 간 것은 빠트리지 않는다

잘 씻어 쪼개 고추속의 씨 발라내고 분쇄기에 곱게 간 고추를 김치양념에 섞어 넣으면

김치의 빛깔이 고운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조미료 넣지 않더라도 맛이 훌륭하며

꿀이나 설탕을 따로 넣을 필요없을 만큼 달달한 맛도 나는 것이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라도 이 붉은고추 간 것을 넣으면 김치의 맛이 무겁지 않고 시원해진다

 

김치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답사여행을 한답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니 낯선고장에서 식사할 때가 종종있는데

그 때마다 불만이 김치였다

다른 고장은 그렇다치고라도

음식솜씨 좋다는 전라도에서 식사때마다 불만이 김치였다

상에 올라 온 반찬들 간이 맞지 않더라도 입게 맞지 않더라도 김치만 맛있으면 되는데

그 김치가 통 맛이 없더라는 것이다

이런 내 말을 들은 지인들은 남도의 김치는 젓갈이 많이 들어갔기에 그럴것이라 하지만

나도 경상남도 바닷가가 고향인지라 어릴적부터 김치엔 당연히 젓갈이 들어가야 되는 것이라 알고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를 먹고 자랐다

지금도 난 김치를 담을 때 젓갈을 빼놓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하도 김치가 불만이어서 영광에서 해남에서 담양에서 김치를 아주 세밀하게 살피기도 했었는데

역시 아니었다

왜 그럴까

남도의 음식은 모두 맛나다고 입을 모아 칭찬이 자자한데...

일반 가정집의 음식과 음식점의 음식이 다른가

한국밥상의 기본이 김치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여간 지금도 이해 못할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김치가 있기는 하다

 

2003년 8월 중순 3박4일 동안 남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빡빡한 답사여행의 중간 쯤 해남에서 자동차를 달려 땅끝마을 가까이 갔을 때

넓은 자동찻길가에 하얀천막을 쳐놓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부르고 있었다

무슨일이가 싶어 나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동차를 세웠더니

자동차로 다가온 사람들은 무언가 묵직해보이는 하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우리고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한 맘에 무엇이라도 고마움을 표시해야 겠는데 시골이라 마땅 한 것도 없고

또 어줍잖은 것은 괜시리 실례가 될 것 같기에

이곳 마을 사람들이 작년에 담았던 김치를 조금씩 모아서 이렇게 드리게 되었습니다

묵은지처럼 곰삭은 이곳사람들의 情을 헤아려 맛있게 잡수셨으면 합니다

거듭 이고장을 찾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땅끝마을 해남군 송지면 사람들 이었다

여름이면 땅끝마을 송지면은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을 만치 복잡하지만 그곳에서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은

피서철 한 때 찾아드는 외지인들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이 도움이 된다했다

그 고마움을 묵은지 두어포기로나마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음료수 챙겨다니는 가방에 선물로 받은 묵은지를 고이고이 모셔가지고 다니다

답사여행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풀어보았다

젓갈냄새가 요동치는 시커멓고 텁텁한 묵은지 세 포기

여행짐 풀기도 전에 우선 묵은지부터 챙겨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날 고등어조림할 때 살짝 헹구어 냄비 밑에 깔아 지졌더니 얼마나 맛이 있는지.

남은 묵은지는 돼지고기넣고 볶아 먹고...

진한 젓갈냄새같이 오래오래 남아 있던 해남 송지면의 사람들과 묵은지에 대한 기억

그 이후 남도의 어딜가도 그렇게 맛난 묵은지나 김치를 먹어 보질 못했다

 

지금 김치 두 통 담아놓고

아직 손에서 젓갈냄새.고춧가루 물 지워지지 않았지만 별스레 송지면의 묵은지 생각이 나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