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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대안사광자대사탑(大安寺廣慈大師塔).전남 곡성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곡성 대안사광자대사탑(大安寺廣慈大師塔).전남 곡성

푸른새벽* 2010. 3. 18. 18:10

 

 

 

 

 

 

 

 

 

 

 

 

 

 

 

 

 

 

 

대안사광자대사탑(大安寺廣慈大師塔)


보물 제274호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20 태안사 


대안사 입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로, 광자대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광자대사는 대안사의 2대 조사(祖師)로, 경문왕 4년(864)에 출생하여 혜종 2년(945) 82세로 입적하였다. 자는 법신(法身)이고 법명은 윤다(允多)이다.

 

부도의 형태는 바닥돌부터 꼭대기까지 8각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차례로 놓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덩굴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받침돌 위에 유난히 낮은 가운데받침이 올려져 있다. 윗받침에는 16잎씩의 연꽃을 두 줄로 조각하여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탑몸돌은 앞뒷면 모두 탁자에 놓여 있는 향로모양을 새겨두었고, 그 옆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높은 편이나 추녀에 이르러 얇아지고 있어 중후한 감을 덜어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흔하지 않게 머리장식부분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부도는 전체적인 모습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완벽한 형태미를 보여주며, 각 부의 구성과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조화롭다. 
*문화재청자료*

 

 

대안사광자대사탑(大安寺廣慈大師塔)


광자대사 윤다는(廣慈大師 允多) 8세에 집을 떠나 이곳저곳 헤매다가 15세에 태안사에서 선을 수행하고 한동안 태안사를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33세에 주지를 맡아 뛰어난 법력을 보여 많은 선승을 이끌었다.후삼국이 다투던 당시 윤다는 효공왕으로부터 기울어가는 신라를 보우해줄 것을 부탁받았으나 효공왕이 아닌 왕건의 요청을 받아들여,이후 고려왕조의 지원하에 절을 크게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부도는 고려 혜종 2년(945) 82세의 나이로 윤다가 입적한 뒤 고려 광종 원년(950)에 세워졌으며 2.8m 높이의 팔각원당형이다.팔각의 지대석 위에 여러 층단의 하대석이 어슷하게 놓여 있고,그 위의 복련으로 된 갑석 위에 얕고 잘록한 중대석이 얹혀 있는데 각 면에는 안상이 하나씩 조각돼 있다.상대석은 꽃잎 안에 다시 꽃무늬가 있는 앙련이고,그 위에 한 면에 한 쌍씩의 안상이 있는 난간형의 몸돌받침이 있다.


팔각의 몸돌 각 면은 네모난 둘레를 마련하고 그 안에 각종 조각을 장식하였는데 앞뒷면에 문비형,그 좌우에 사천왕상,나머지 남은 두 면에 가마를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지붕양식을 쏙 빼닮았는데,서까래와 부연,기와까지 세밀하게 조각돼 있다.상륜부에는 노반.앙화.복발.보개.보주가 차례대로 온전히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하대석이 넓어 안정감이 있고,지붕돌의 처마끝이 짧고 경쾌하게 반전되어 있다.조각은 대체적으로 평면적이나 장식화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