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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전남 곡성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곡성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전남 곡성

푸른새벽* 2010. 3. 19. 22:03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


보물 제273호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20 태안사 


이 탑은 승려 적인선사 혜철의 부도탑으로, 혜철 스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대안사는 신라시대 선(禪)을 가르치는 유명한 종파인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로 이름이 높으며, 적인선사 혜철(惠哲)은 대안사가 속한 동이산파를 연 스님이다.

 

이 탑은 전체적인 형태가 모두 8각형으로 이루어져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3단의 기단(基壇) 위로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올리고 있다.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아래받침돌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면마다 사자상을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은 그 높이가 매우 낮고, 면마다 가늘고 길게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윗받침돌은 옆면에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몸돌은 낮은 편이지만 온화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앞·뒷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다. 그 옆면에 다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넓은 편으로 밑면에는 서까래를, 윗면에는 기왓골과 막새기와까지 표현하여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추녀의 곡선은 완만하며, 각 귀퉁이는 급하게 치켜올려진 상태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앙화(仰花), 복발(覆鉢), 보륜(寶輪), 보주(寶珠) 등이 차례로 잘 남아있다. 이러한 머리장식들은 기단과 탑신의 화려한 조각들과 어울려 탑을 전체적으로 장엄하게 보이도록한다.

 

탑의 전체적인 형태는 무겁지만 너그러운 품위를 지녔고, 각 부분의 조각은 매우 자세하게 새겨져있어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이르러 양식상 석탑을 비롯해 돌로 만든 조형물들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것이 하나의 경향인데, 이 부도탑은 매우 뛰어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

 

탑 옆의 비문을 보면, 적인선사는 신라 원성왕 1년(785)에 태어나 경문왕 1년(861)에 입적하였다. 따라서, 이 부도탑도 적인선사가 돌아가신 86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자료*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


철감선사 부도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적인선사 부도는 철감선사 부도처럼 철저한 비례 속에 구현된 화려함은 없지만 땅 위에 사각의 지대석이 놓인 것 외에는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팔각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조용하게 장엄함을 자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대석 각 면마다 갖가지 사자를 새긴 것말고는 광자대사 부도와 흡사한데 광자대사 부도가 적인선사의 부도를 모방하였음을 알 수도 있다.


적인선사 부도는 사각 지대석 위에 각 면마다 안상이 한 쌍씩 조각된 팔각의 하대석 받침이 놓여 있고 하대석에는 각 면마다 방향과 형태를 달리한 사자가 한 마리씩 도드라지게 조각되었으며 상하에 3단씩의 굄과 받침이 있다.상대석 위에는 몸돌받침이 끼여 있는데,각 면에 안상이 한 쌍씩 조각돼 있으며 위쪽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갑석과 몰딩이 있다.


몸돌은 낮은 편이지만 퍽 안정감 있으며,앞면에 문고리 장식이 조각되었다.또한 납작하고 넓적한 지붕돌은 목조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으며 귀꽃은 없지만 처마가 살짝 들렸다.상륜부로 앙화.복발.보륜 등을 갖추고 있다.통일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신라 특유의 조각양식의 전통을 잃지 않고 있다.


부도가 놓인 둘레 네 귀에 주초가 놓인 것으로 보아 부도를 둘러싼 회랑이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이 부도와 부도비는 원래 현재의 자리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오른쪽 산등성이에 있었던 것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