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옥천 용암사(沃川 龍岩寺).충북 옥천 본문

☆~ 절집.절터/충 북

옥천 용암사(沃川 龍岩寺).충북 옥천

푸른새벽* 2010. 8. 4. 17:28

 






 

 











 






 

 






 






 






 











 





 

 











 

 






 

옥천 용암사(沃川 龍岩寺)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4

 

용암사(龍巖寺)는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4-1번지 장령산(長靈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옥천읍에서 영동 쪽으로 가는 1번 국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가면 오른편에 삼청리가 있고, 그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장령산을 향해 서남쪽으로 다시 2㎞를 거슬러 올라가면 울창한 숲 속에 있는 용암사에 닿는다. 태백산에서 연이은 소백산의 정기를 받은 장령산 중턱에 자리한 용암사는 옥천벌을 한눈에 굽어 보고 있다.


용암사라는 절 이름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절의 동북쪽, 즉 석탑 바로 뒷편에 장령산에서 뻗어내린 거대한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흑룡이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 바위는 애석하게도 일제강점기에 파괴되고 현재는 그 일부만 남아 있다.

 

용암사의 창건년대를 《옥천군지(沃川郡誌)》에서는 신라시대 552년(진흥왕 13)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용암사 안내판에 의하면 진흥왕 2년인 541년 의신(義信)조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도 한다. 의신조사가 인도에 가서 불법을 구하고 고국에 돌아와 이곳 옥천 장령산에 주석하며 용암사를 창건하고, 그 뒤 속리산 법주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용암사의 창건년대는, 〈법주사사적기(法住寺事蹟記)〉에 553년에 의신조사가 법주사를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절대년대를 믿기 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창건 이후 전각은 여러 차례 중수와 중수·중건을 반복하였을 것이지만, 기록으로 전해 오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닌 석탑과 마애불상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에도 법등이 계속 이어져 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佛宇)조나 《여지도서》의 사찰조에 용암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선 중기의 용암사의 역사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임진왜란 때 병화로 절이 불에 타서 폐허화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한 동안 복구되지 못한 채 지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반포한 사찰령에 의하여 전국의 사찰은 30본산 체제 중 법주사 말사에 속하게 되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