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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보문사(普門寺).경북 예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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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보문사(普門寺).경북 예천

푸른새벽* 2010. 9. 29. 21:52

 

 





 





 





 





 





 





 









 

 





 





 





 









 

 





 





 

예천 보문사(普門寺)

 
경북 예천군 보문면 수계동 158

 

보문사(普門寺)는 1,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고찰로, 예천군 보문면 수계동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보문사의 창건 연대는 「보문사 사적」에 의하면 신라시대인 677년(문무왕 17) 의상(義湘) 대사에 의하여 처음 완성되었다고 전한다. 그 뒤 고려시대에 들어와 1184년(명종 14)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창하였는데, 지눌이 '화엄경'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려대에는 사고(史庫)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출몰로 1381년(우왕 7) 7월 충주 개천사(開天寺)로 옮겼다.조선시대에는 1407년(태종 7)에 교종에 속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569년(선조 2)에는 법당을 비롯하여 당우를 중수하였으며, 몇 해 전 주지 도문(道門) 스님에 의해 1591년(선조 24)에 해당하는 연호와 ‘화주(化主) 도명(道明)’ 등이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해에 도명 스님 등에 의해 중수가 있었던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단지 극락보전과 반학루(伴鶴樓), 요사인 염불당 등만 남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뒤 1750년에 염불당을 중창하였고, 1791년(정조 15)에 다시 중창하였다. 이어서 1882년(고종 19)에 강주(講主) 금해(錦海)가 이 절에 머물 때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보조 영당과 노전, 그리고 선당․조실․범종각․나한전․산신각․칠성각 등의 전각이 즐비하였으며, 대중들의 수도 50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산내암자인 운계암에는 3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 염불당의 해체 수리시 발견된 상량문과 대법당 상량문을 통하여 1848년 염불당을 새로 지었고, 1872년에 대법당을 짓는 등 조선 후기에도 면면히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근세에 들어서는 1917년에 한 차례 중수한 것을 비롯하여 1926년에도 불전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1967년에는 극락보전을 보수하고 단청하였다.

최근에는 도문 스님에 의하여 중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1980년 삼성각을 신축하였고, 1988년 반학루와 염불당을 해체․수리하였다. 그리고 1991년 적묵당을 신축하였고 이듬해 극락보전까지 중수하였다.


부속암자로는 운계암(雲溪庵)과 불타암(佛陀庵)이 있다. 운계암은 1992년에, 불타암은 1993년에 중창 복원하였으나, 불타암은 현재 잘못된 건물 복원으로 폐사 직전에 처해 스님도 떠나고 건물만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