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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비암사(燕岐 碑岩寺).충남 연기 본문

☆~ 절집.절터/충 남

연기 비암사(燕岐 碑岩寺).충남 연기

푸른새벽* 2010. 12. 23. 09:58

 

 






 






 






 











 

 






 






 






 











 

 






 






 






 






 











 

 






 






 






 






 

연기 비암사(燕岐 碑岩寺)


충남 연기군 전의면 다방리 4

 

비암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전해지는 말로는 중국 한나라 무제 때인 오봉원년(B.C.57)에 창건되었다고도 하고, 1954년에 간행된 『전성지(全城誌)』라는 책에는 박혁거세 즉위년에 세워졌다고도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삼국시대 창건된 사찰로 전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남북국시대 초기에 혜명법사(惠明法師)가 창건하였다고도 하나 역시 확실하지 않으며 현장의 안내문, 통일신라말 도선(道詵)국사가 창건 또는 중창한 사찰이라고도 하나 이 역시 확실하지는 않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제의 북혈사(北穴寺)라고도 하며, 백제 멸망 후 그 유민들에 의해 건설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현재 양력 4월 15일에 괘불을 걸고 백제대제를 거행하는데, 이 행사는 약 1,300년간 계속된 것이라 한다. 이는 비암사가 백제의 부흥을 위해 백제 역대 임금과 대신들의 영혼을 위한 천도사찰로서 지어진 백제의 마지막 사찰임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창건 연혁은 물론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절 안에 위치한 건물과 부도 및 발견유물 등을 통해 그 연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극락보전 앞에 위치한 삼층석탑 정상부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삼존석불(癸酉銘全氏阿彌陀三尊石像, 國寶 제106號), 을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 寶物 제367號),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跏石像, 寶物 제368號) 등은 남북국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절의 역사가 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극락보전 앞에 위치한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비암사가 고려시대에도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역 아래쪽에 위치한 부도 중 하나인 청한당성정탑(淸閑堂性淨塔)에는 “강희갑오입탑(康熙甲午立塔)”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강희갑오년은 1714년(숙종40년)이다. 주 법당인 극락보전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영되었을 가능성도 추정해볼 수 있다.
 

비암사에 대한 문헌기록으로는 영조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전의(忠淸道全義)> 사찰조(寺刹條)에 “碑巖寺 西南間距十五里”라는 간단한 기록이 보일 뿐이다. 이 외의 조선시대 문헌 대동지지,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에서는 비암사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여지도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해동지도(海東地圖)』에도 전의현 서남쪽에 위치한 비암사가 나타난다. 부도와 극락보전, 그리고 『여지도서』 및 『해동지도』를 통해 비암사는 조선후기 숙종대에서 영조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비교적 번성하였을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