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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백장암(百丈菴).전북 남원 본문

☆~ 절집.절터/전 북

남원 실상사 백장암(百丈菴).전북 남원

푸른새벽* 2011. 5. 25. 00:23

 

 











 






 






 

 






 






 






 

백장암(百丈菴)


수청산(772m) 중턱에 자리잡은 백장암(百丈菴)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고요하지만 구불구불 올라가며 바라보는 산 풍경이 다양하여 지루한 줄 모른다.


암자 입구에 돌과 흙을 섞어가며 쌓은 낮은 담장 안의 삼층석탑과 석등이 눈길을 잡아 끄는데 가을이면 낮은 담장 한쪽에 서 있는 느티나무가 노란 단풍잎을 흩뿌려 놓는다.


법당과 칠성각,산신각 등이 있는 조그만 암자지만 경내 아래쪽 밭에 뚜렷이 남아 있는 옛 절터로 보아 규모가 상당히 컸으리라 짐작된다.창건년대가 불분명하지만,본절인 실상사의 창건과 역사를 같이 하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으며 임진왜란.정유재란 때는 실상사의 모든 승려들이 이곳으로 피난와 화를 면하기도 했다고 한다.


삼층석탑과 석등이 한 단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아랫단에 자그마한 석종형 부도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삼층석탑은 이형탑으로 탑 전체를 두른 장식조각들의 수법이 절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장엄하고 섬세하며 단출하지만 단아한 석등도 삼층석탑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각각의 석조물의 뛰어남보다 이들을 모아놓은 아늑한 공간이 더 정갈하다.


현재는 삼층석탑 위 터에 법당을 건립하고 좌우에 선원과 요사채를 세워 옛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백장암(百丈菴)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4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실상사(實相寺) 소속 암자이다.
828년(신라 흥덕왕 3) 홍척(洪陟)이 실상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세워, 실상사가 사세를 크게 떨칠 때에는 참선 도량으로 유명하였다.


1468년(조선 세조 14) 실상사가 화재로 폐허가 된 이후부터 1679년(숙종 5)까지는 이 암자가 중심 사찰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1800년대 초에 침허가 중창하였고, 1868년(고종 5) 10월에 화재가 나자 이듬해에 운월이 본래의 절터에서 약간 위쪽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900년(광무 4) 다시 화재가 나자 1901년에 남호(南湖)가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광명전과 문수전·칠성각·산신각·선실 등이 있다. 이 중 광명전은 1910년에 지어진 것으로 목조 맞배지붕 건물이다.


백장암에는 귀중한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데, 국보 제10호인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 보물 제40호 실상사백장암석등, 보물 제420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가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 삼층석탑은 1998년 여름에 기단부에서 팔부신중 조각이 발견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보통 팔부신중은 서 있는 모습이지만 이곳에 표현된 것은 악귀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였다. 이러한 양식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며, 신라 후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한편 1584년(선조 17)에 만들어진 청동은입사향로는 현재 전주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백장암보살좌상은 1999년 4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실상사에 소장되어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