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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일원(實相寺一圓).전북 남원 본문

☆~ 절집.절터/전 북

남원 실상사일원(實相寺一圓).전북 남원

푸른새벽* 2011. 5. 23. 13:35

 

 











 

 











 






 

 











 

 






 






 











 

 






 






 






 











 

 






 






 






 






 






 











 

 






 






 






 











 

 






 






 

지리산 실상사(智異山 實相寺)


지리산 자락인 남원시 산내면에 둥지를 튼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사찰이다.암자인 약수암과 백장암의 문화재를 포함하여 국보 1점과 보물 11점 등넓은 경내가 비좁으리 만치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洪陟 證覺大師.생몰 미상)가 창건하였는데 홍척은 도의(道義)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한 뒤 남원으로 들어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한 분이다.이후 2대조 수철(秀徹.817~893)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 절이 중창되었으며 선풍도 펼쳤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타버린 뒤 폐사되다시피 하여 근 100년을 지내오다 숙종 16년(1690) 36동의 건물을 다시 세우는 등 크게 중창되었다.이후 순조 21년(1821)에도 중건되었으나 고종 20년(1883) 함양 출신 양재묵,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아까운 사찰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이듬해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삼은 꽃밥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은 실상사는 여느 지리산 자락의 산사와 달리 평지에 들어서 있어 분위기가 색다르다.사역을 따라 담장을 낮게 두르고 담 안쪽으로 키 큰 나무들을 둘러 세운 풍광이 푸근하고 고즈넉하다.


반야봉.노고단.고리봉 등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만수천이 작은 개울이 되어 실상사 앞으로 흐른다.해탈교를 건너 논길을 200m 정도 걸어가면 산문인 만세루가 나온다.해탈교가 들어서기 전 징검다리가 아기자기 놓여 있을 때에는 개울을 건너는 운치가 그윽했다고 한다.


해탈교를 전후하여 서 있는 세 기의 돌장승은 그 표정이 무섭고 당당하여 절집을 노리는 잡귀들을 가히 물리칠 만하다.


만세루로 들어서면 절 마당에 삼층석탑 두 기가 동서로 나란히 서 있고 뒤쪽 중앙에 석등과 보광전이 차례로 서 있으며 보광전 양 옆으로 약사전과 칠성각이 있다.석등 양 옆으로는 명부전과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평지에 들어선 전형적인 1금당 쌍탑의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만세루와 삼층석탑 중간에 종루가 있으며,종루 뒤쪽에서 발굴된 건물터는 원래의 가람과는 별도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오층목탑이 있었던 장륙전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대웅전인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본래의 넓은 금당터 기단 위에 또 하나의 작은 기단을 만들어 세운 작은 건물이다.본래 금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큰 건물로 추정된다.안에는 홍척.수철 두 스님의 영정과 범종이 있다.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은 현종 5년(1664)에 제작되었으며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일본 경찰에게 문초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상사에는 일본과 관련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당시는 왜구가 남해안과 전라도 일대에 심심치 않게 나타나 노략질을 삼던 때이다.홍척은 도선에게 부탁하여 절터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현재의 실상사 약사전 자리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는 말을 듣고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우연의 일치일까?약사전의 창호가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이고 약사전 앞에는 무궁화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한편 1967년 경내에서 발견된 실상사 동종은 현재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발견 당시 이미 상반부가 없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이 비록 유곽.비천상.당좌뿐이지만 그 조각솜씨가 우수하여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 동종을 연상하게 한다.남아 있는 부분이 입지름으로 보아 높이 1.67m,입지름 91cm인 상원사 동종보다 약간 큰 규모였으리라 추정되며 실상사 창건 당시 주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광전 옆에 있는 칠성각은 팔작지붕 형태로 아담하며 요사채 옆으로 난 길가 한쪽에 있는 화장실은 입구에서부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빼어난 목조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보곤 한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 중에서는 약사전만이 조선 중기의 격식을 갖춘 단정한 건물이다.약사전에 모신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철불은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영험한 불상으로 인근 불자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요사채 쪽 사잇길로 들어서면 극락전 주변에 홍척스님의 부도와 부도비 그리고 실상사의 제2대 조사인 수철스님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이들 부도와 부도비들의 위치가 본래 자리인지는 발굴하지 않은 상태여서 속단하기는 어렵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남원 실상사일원(實相寺一圓)


사적 제309호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33-3외 


실상사와 백장암 약수암을 포함한 일대로서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있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 홍척이 창건하였으며, 제자 수철대사와 편운대사도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화재를 입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에서 머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숙종 때 다시 지었고 고종 때 화재를 입어 작게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명부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과 탑비(보물 제34호)·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부도(보물 제36호)·실상사 3층석탑(보물 제37호)·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과 그 탑비(보물 제39호)·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실상사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약수암 목조탱화(보물 제421호)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절 입구에는 상원주장군(중요민속자료 제15호)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