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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선원사(南原 禪院寺).전북 남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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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선원사(南原 禪院寺).전북 남원

푸른새벽* 2011. 5. 29. 12:25

 

 






 






 






 






 






 






 






 






 






 

남원 선원사(南原 禪院寺)


전북 남원시 도통동 392-1 선원사


선원사는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銑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신라의 유서깊은 고찰이다.


창건배경에는 국사가 남쪽의 산천을 유력하다가 남원에 이르러 지형을 살피니 주산(主山)인 백공산(百工山:만행산)의 지세가 객산(客山)인 교룡산에 비해 너무 허약하여, 지세를 돋우고자 선원사를 비롯하여 만복사(萬福寺)ㆍ대복사(大福寺)를 창건했다는 설이 전한다.


또 한편으로 선원사가 자리한 백공산은 만행산의 한 줄기에 불과했는데, 굳이 만행산이라 한 것은 큰 산의 기운을 빌러 지세를 북돋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사찰의 역사와 관련한 기록은 「선원사사적비(禪院寺事蹟碑)」를 비롯한 『범우고』ㆍ『가람고』ㆍ『용성지(龍城誌)』 등의 기록과, 사찰에 전하는 「선원사중수기(禪院寺重修記)」ㆍ「선원사요중창기(禪院寺寮重創記)」 등 여러 현판을 참고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옛 남원부의 읍지인 『용성지』에는 선원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선원사는 남원부 동쪽으로 3리 떨어진 평야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1048년 전인 당나라 희종(僖宗) 건부 2년, 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전쟁으로 없어진 뒤 수차례 흥폐를 거듭하였고, 사찰에는 약사여래로 모시는 금불상이 하나 있다. 1755년에 남원부사인 김세평이 중창하여 이 지방의 승려로 하여금 거주케 하였다. 위의 기록과 사적비 등을 통해 875년에 창건된 뒤 1755년(영조 31)에 김세평(金世平)이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초창기에는 당우 30여 동에 70~80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대찰로서 만복사에 버금가는 규모였으며,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일대까지 사역(寺域)이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수차례의 흥폐를 거듭하다가 1597년 정유재란의 병화로 만복사와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의 선원사는 1755년에 중창된 것으로, 당시 노계소ㆍ신도계의 협의 아래 『용성지』에 기록된 ‘금불(金佛)’을 모신 약사전과 명월당을 중건하어 현재의 가람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남원지역의 중심사찰로서 1915년에는 괘불탱을 남원천변에 걸어 기우제를 지냈으며, 1917년에는 주지 수용기선(水龍琪善) 스님이 비로탱ㆍ신중탱ㆍ지장탱 등 수많은 탱화불사를 하였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