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완주 송광사(完州松廣寺).전북 완주 본문

☆~ 절집.절터/전 북

완주 송광사(完州松廣寺).전북 완주

푸른새벽* 2011. 6. 4. 21:52

 






 

 






 






 











 

 






 






 






 






 






 






 






 






 











 






 

 






 






 

완주 송광사(完州松廣寺)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


송광사의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각기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나 대체로 583년(신라 진평왕 5)에 터를 잡았고, 867년(경문왕 7)에 보조체징(普照體澄) 스님이 창건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후 고려시대에 폐허가 되어 주춧돌만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던 것을 보조국사 지눌(知訥)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대성지(大聖地)임을 알고 표시해 두어 후일 제자들에게 중창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현재 사찰에 전하는 『송광사개창비(松廣寺開創碑)』의 다음 내용을 보면 이러한 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옛날 고려시대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종남산을 지나다가 영천(靈泉)이라 부른 우물을 발견하고, 물을 마셔보니 그 맛이 특이하여 장차 이곳에 사찰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 징표로 샘 주위의 네 귀퉁이를 돌로 쌓아두었다. 이후 순천으로 가서 조계산 계곡에 송광사(松廣寺)를 짓고 그의 법이 머물게 하였다. 그 뒤 스님은 제자들에게 전주 종남산을 지날 때마다 그곳에 절터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과, 거기에 절을 지으면 반드시 크게 번창할 것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뜻은 옮겨지지 못하다가 조선중기에 접어들어 1622년(광해군 14) 응호(應浩)ㆍ승명(勝明)ㆍ운정(雲淨)ㆍ덕림(德林)ㆍ득순(得淳)ㆍ홍신(弘信) 스님 등이 보조국사의 뜻을 따라 사찰을 세웠다. 이 공사는 14년이 걸려 1636년(인조 14)에 완성을 보게 되어, 당시 무주 적상산(赤裳山) 안국사 주지로 있던 벽암대사(碧岩大師)를 개창조(開創祖)로 삼았다고 한다. 이때 절터의 땅은 승명(勝明) 스님의 증조부인 이극룡(李克龍)이 희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건물이 모두 완성된 뒤 벽암대사를 모시고 50일 동안 화엄법회를 열었는데 이때 수천 명으로부터 시주를 받았으며, 보조국사의 뜻을 받들었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종남산 송광사라 정했다고 한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