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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등산 봉정사(鳳停寺).경북 안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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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등산 봉정사(鳳停寺).경북 안동

푸른새벽* 2011. 8. 18. 12:35

 

 





 





 









 

 





 





 





 









 

 





 





 





 





 





 





 





 





 









 

 





 





 





 









 

 





 









 

 

천등산 봉정사(鳳停寺)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번지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만든 봉황새를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봉정사는 창건 이후의 역사는 대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다. 현존하는 전각 등으로 볼 때,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높은 사격을 지니고 법등이 지속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들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단편적이나마 전각의 상량문 등을 통해 역사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1972년 절의 극락전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여기에 고려 후기인 1363년(공민왕 12) 3월 전각의 지붕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에는 1516년(중종 11) 무렵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사촌동생 이수금(李壽芩)과 함께 절에 머물며 공부하였다. 절의 일주문 아래 계곡에 있는 명옥대(鳴玉臺)는 본래 낙수대(落水臺)였는데 이 무렵부터 이황이 고쳐 부른 이름이다.
 

그 뒤 1616년(광해군 8) 고금당을 고쳐지었고, 1625년(인조 3) 3월에는 용수사(龍壽寺)의 전 주지 축담(竺曇) 스님이 퇴락한 대장전(大藏殿)을 중수하였으니, 지금의 극락전이 바로 이것이다. 1712년(숙종 38) 대웅전의 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한참을 지나 1809년(순조 9) 4월 대영(大英)·재익(在益)·지원(知源)·서생(瑞生) 등의 스님이 힘을 모아 극락전과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다시 1863년(철종 14) 등촉계(燈燭契)의 시주금으로 전각 일부를 수선하였고, 1882년(고종 19) 현판을 고쳐 칠했다. 최근에 들어 1969년 고금당을 해체·복원하였고,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극락전을 역시 해체·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