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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탑리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경북 의성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의성탑리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경북 의성

푸른새벽* 2011. 9. 2. 18:11

 

 

 

 

 

 

 

 

 

 

 

 

 

 

 

 

 

 

 

 

 

 

 

 

 

 

 

 

 

 

 

의성탑리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


국보 제77호


의성군 금성면 탑리는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이름으로 지닌 마을이다.그 만큼 이곳의 탑은 유명했던 듯한데,무엇보다도 탑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옛 면사무소 자리 언덕에는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탑의 뒷쪽에는 탑리여중이 있으니 그 학생들은 뒷마당에 탑을 한 기 지니고 있는 셈이다.


9.6m 높이의 이 탑을 옆에서 보면 지붕돌의 낙수면이 층단을 이룬 모양이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의 특징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이런 석탑을 가리켜 전탑을 본떴다는 뜻으로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 한다.우리나라 모전석탑의 시조는 신라 선덕여왕 때로 634년에 세운 경주 분황사탑이다.분황사탑은 가무잡잡한 안산암을 벽돌 크기로 잘라 쌓은 탑이다.반면에 탑리 오층석탑은 화강암을 좀더 크게 잘라 쌓되,벽돌을 쌓은 듯이 층지게 잘랐다.그러므로 중국 전탑의 모방에서 벗어나 석탑의 독잦적인 전형을 이루어가는 과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부재의 크기도 점차 커지고 구조가 단순해진 편이다.5층을 쌓아 상승감을 느낄 수 있지만 비례를 적절히 하여 안정감이 있다.


분황사탑이 1층 몸돌의 네 면에 감실이 있는 것과는 달리 이 탑은 남쪽 한 면에만 감실을 냈는데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는 크기이다.감실이 있는 1층 몸돌부터는 네 귀퉁이에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돌로 기둥을 삼았다.이러한 모양은 조선 초 이전의 목조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배흘림'이라고 한다.나무 기둥을 높직이 세웠을 때에 위쪽이 넓어보여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착시를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미리 좁게 하는 방법이다.목조건물에나 쓰이는 이러한 수법을 돌에도 적용한 것이다.위쪽으로는 기둥머리(柱頭)와 그 위에 가로놓이는부재인 방(枋)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낙수면의 추녀 끝부분에서 약간의 반전 마저도 엿보인다.이러한 점들은 초기 석탑에서 보이는 수법으로,목조건축에서 번안해온 석탑의 과정을 보여준다.그러므로 이곳 탑리 오층석탑은,지붕돌의 낙수면 못브은 전탑에서,모서리기둥 처리는 목탑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을 함께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탑으로 국보 제77호로 지정되었다.우리나라 석탑이 한편으로는 전탑에서,다른 한편으로는 목탑에서부터 발전해나가다 두 형식이 결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되는 것이다.


지대석은 14개의 돌,기단은 24개의 돌로 면석을 이루었으며,우주와 탱주도 각각 한 돌씩이어서 하나의 건축기단 구조를 보이고 있다.이런 점은 삼국의 통일기 무렵에 세워진 초기 석탑의 특징이다.그래서 이 탑은 7세기 중엽에 세워졌다고 여겨진다.다만 아래쪽을 이렇게 정교하게 쌓은 것에 비해 2층 이상은 매우 간략하게 했는데,모퉁이의 기둥 모양은 다른 돌을 쓰지 않고 직접 새겼다.


석탑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면 1층 탑신 북쪽 면석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는 일본 연호인 대정(大正)15년 6월,곧 서기 1926년 6월에 '有村正浩'라는 일본인과 '申基燮'이라는 한국인등 8명이 석탑보존회를 만들어 이 석탑을 고쳐 세웠음을 기념하여 새긴 것이다.일제강점기에 이러한 탑들이 '문화재'라는 인식을 얻어 수리되었던 한 예이기도 하지만,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탑이나 집들이 원형과는 다르게 고쳐진 경우도 많아서 그때 어떤 변형은 없었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또 고쳐 지었더라도 탑에 이러한 글귀를 새겨넣었다는 것은 문화재의 원형을 훼손하는 일이다.


1층은 지붕돌과 층급받침이 다른 돌로 되어 있는데 비해 4층과 5층은 지붕돌과 층급받침을 한 돌로 만들어 얹었다.지붕돌의 추녀 부분에 풍탁을 매단 자리처럼 여겨지는 구멍도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 탑의 앞쪽에,뭉그러져서 잘 알아볼 수 없기는 하지만 석등의 받침돌이 아직 남아 있고 주춧돌로 보이는 석재들이 땅에 몇 박혀 있을 뿐 그밖의 절터의 다른 흔적은 찾아보괴 어렵다.동네 강아지가 와서 맴도는 이곳은 탑리마을의 야트막한 언덕으로,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당시 사람들은 이곳에 탑을 세우고 무슨 소망을 빌었을까?
*한국문화유산답사회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의성탑리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

국보 제77호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1383-1


탑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분황사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