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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간월사지석탑(澗月寺址石塔).울산광역시 본문

☆~ 풍경소리/울산광역시

울주 간월사지석탑(澗月寺址石塔).울산광역시

푸른새벽* 2016. 2. 1. 20:21

 

 

 

 

 

 

 

 

 

 

 

 

 

 

 

 

 

 

 

 

 

 

 

 

 

 

 

 

 

 

 

 

 

 

 

 

 

 

 

 

 

 

 

 

 

 

 

 

 

 

 

 

 

 

 

 

 

 

 

 

 

 

 

 

 

 

 

 

 

 

 

 

 

 

 

 

 

 

 

 

 

 

 

 

 

 

 

 

 

 

 

 

 

 

 

 

 

 

 

 

 

 

 

 

 

 

 

 

 

간월사지석탑(澗月寺址石塔)


훼손되어 일부만 남은 유물은 복원이 되는 것이 좋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대개의 경우 복원된 유물에 드러난 우리시대의 미적 감수성에 실망 해온 것이 사실이다.아니 복원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겠다 싶을 정도로 복원 이후 그 유물의 가치가 절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이곳 간월사 석탑은 복원으로 인해 유물이 생기돌게 달라진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발굴 당시 금당터를 등지고 있는 동삼층석탑의 경우에 1층 몸돌과 1.2.3층 지붕돌,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 가운뎃돌 4점과 덮개돌 일부가 쓰러진 상태였고,서삼층석탑의 경우에는 상층기단 면석 가운뎃돌 1점 그리고 보존 상태가 좋은 1층 몸돌과 3층 몸돌,1.2.3층 지붕돌 등 동삼층석탑보다 더 적은 부재만이 쓰러진 채 남아 있었다.


다행히 동삼층석탑의 경우 남아 있는 부재들이 복원의 자료가 되는 꼭 필요한 부재였고,서삼층석탑의 경우는 쌍탑임이 틀림없는 동삼층석탑을 참고해 상륜부를 제외한 석탑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원형의 재현이라는 복원 원칙에 충실한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복원된 석탑은 두 탑 모두 6m정도이며,석가탑의 단아하고 정중한 모습에는 결줄바 아니지만,그에 못지않은 균형감과 건장함을 보여주고 있다.사람에 비유하자면 20대의 어설픔은 사라지고 40대에 나타나는 조로의 기미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30대의 진취적이고 노련한 모습이라고 할까.


두 탑 모두 이층기단에 삼층 탑신부가 올라앉은 모습이며,크기나 부재 구성수법이 같다.다른 점이 있다면 1층 몸돌 부분이다.각각의 면에 문 모양과 문을 지키는 인왕상이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었다.한쪽 주먹을 들어 곧바로 내리치려는 듯 매우 위협적인 동작을 하고 있는 인왕상은 구름을 밟고 서 있으며,문 주위에 3단의 테두리를 둘러 표현한 것까지는 두 탑이 서로 같지만 북쪽의 문 안에는 도깨비가 장식된 문비 조각이 없다.이 1층 몸돌에는 정방형 사리공이 장치되었으며 세 층의 몸돌에는 각각 귀기둥이 장식되었다.


지붕돌은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석탑의 양식 그대로 지붕돌 층급받침이 5단이다.보존 상태도 양호하지만,돌을 주무른 솜씨가 여간이 아니어서 한변 한변 날이 선 모습이 날카롭다.몸돌에 조각된 인왕상의 둥글둥글한 그 솜씨가 같은 장인의 손에서 이루어졌을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지붕돌의 낙수면은 완만하게 흐르고,추녀 끝부분에서 살짝 치켜올라가 있으며,여기에 푸령을 달았던 구멍 흔적이 남아 있다.지붕돌에서 눈에 띄는 것이 또 하나 있다.지붕돌받침 아래 가장자리를 따라 홈이 파진 점인데,이는 통일신라 전성기시대에 간혹 보이는 고급 기술이다.


하층기단 덮개돌과 상층기단 덮개돌,그리고 지붕돌 위에 각각의 윗부재를 받치는 굄 2단이 조각되어 있다.상층기단과 하층기단 면석에는 귀기둥과 버팀기둥 두 개씩이 각 면마다 장치돼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영화 평론하듯 별점을 준다면 네댓 개를 받아 마땅한 석탑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간월사지석탑(澗月寺址石塔)


지정사항 없음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산 139번지

 
현재 금당지(金堂址) 좌우에 붕괴된 상태로 일부 결실되어 묻혀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


우편(右便) 탑은 기단석 일부와 탑신 1매, 옥 개석 3매가 있으며 특히 남아 있는 초층 탑신에는 각면의 중앙에 문비(門扉)를 새겨 3단으로 턱을 지어 조각하고 중앙에 귀면 장식 의 문고리를 새겼다. 이 좌우에 높이 약 0.75m의 인왕상을 새겼으며 윗면에는 사리공이 있다.


좌편(左便) 탑은 탑신 1매와 옥개석 2매가 노출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은 역시 간월사의 창건에 따른 쌍탑식 가람의 형태를 갖는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