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원주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강원 원주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원주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강원 원주

푸른새벽* 2016. 10. 8. 19:06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워진,지광국사 현묘탑비라 불리는 높이 4.55m의 탑비이다.11세기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힐 만큼 그 조각이 정교하고 화려하다.탑비 조성에 온갖 공력을 다 들인 흔적이 뛰어난 손맛 곳곳에 배여 있다.넓은 지대석 위에 히차고 당당한 귀부가 놓이고,훤칠하고도 장대한 비신이 거북등에 곧게 서 있으며,그 위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상륜부가 얹혀 있다.


지대석의 구름무늬 위에 거북이 올라앉아 있는데,긴 목을 쭉 빼고 서쪽을 응시하는 용머리 목에는 물고기 비늘이 조각되어 있다.바둑판처럼 조각된 거북의 등에는 칸칸마다 임금 왕(王)자가 수놓아져 있다.거북등의 가운데로 연꽃의 비신 받침대(碑座)르 마련하고 비신을 세웠다.비신 바깥쪽으로 보상당초문을 조각하여 돌린 것만도 섬세하고 화려한데,그 양 측면으로 운룡을 깊게 새겨 생동감이 넘친다.


비신 상단부는 가운데에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라 쓴 사각의 편액이 새겨져 있고,편액 양 옆으로 사각의 틀을 만들어 그 안에 봉황을 새겨놓은 것이 사뭇 이채롭다.그 위로는 비천상.나무.당초문 .해.달이 세밀한 조각솜씨로 새겨져 있어 조화를 이룬다.사대부의 갓 모양으로 생긴,이수에 해당하는 상륜부는 연꽃과 구름 문양 등이 귀꽃에 이르기까지 조밀하고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다.


제자들은 지광국사의 큰 뜻을 기려 사리탑과 사리탑비의 조성에 온갖 공력을 쏟으니 지광국사가 열반에 든 지 18년 만인 고려 선종 2년(1085)에 완성하였다.비문은 당대의 명신 정유산(鄭惟産)이 찬하고,당대의 명필 안민후(安民厚)가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단아하게 썼으며,이영보(李英輔)와 장자춘(張子春)이 새겼다.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우리 나라 탑비 중 가장 화려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전체적으로 대단한 공력과 정성이 깃들여져 있다.더구나 거북등의 임금왕(王)자,비신 측면에 깊이 새겨진 용,전액을 둘러싸고 아로새겨진 봉황 등의 대담한 양식은 오히려 새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임금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나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지광국사가 당대에 미친 영향이나 위치,그의 고승으로서의 면모를 가늠 해볼 수 있는 좋은 징표인 것이다.국보 제59호이다.


현묘탑비 옆에는 우리나라 사리탑 중에서 역시 가장 화려한 것으로 꼽히는 지광국사사리탑이 있었으나 지금은 경복궁 뜰에 옮겨져 있다.


또한 현묘탑비 바로 왼쪽으로는 다소 높은 축대가 쌓여 있고,앞과 오른쪽에는 이중기단으로 잘 짜인 아담한 건물터가 남아 있다.건물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 탑비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혹시 부도전(浮屠殿)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그렇다면 이곳에는 불상과 지광국사 진영이 모셔졌을 터인데,이 역시 흔적이 없고 건물터만 남아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국보 제59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74-2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