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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각연사통일대사탑비(槐山覺淵寺通一大師塔碑).충북 괴산 본문

☆~ 풍경소리/충 북

괴산각연사통일대사탑비(槐山覺淵寺通一大師塔碑).충북 괴산

푸른새벽* 2017. 12. 6. 20:03




































































괴산각연사통일대사탑비(槐山覺淵寺通一大師塔碑)
 


보물 제1295호. 비는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首)를 모두 갖춘 완형의 탑비이다. 귀부는 화강암제로, 여의주를 문 머리 조각이 뛰어나고 등에 6각의 귀갑문이 새겨져 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는 옆면을 안상(眼象)으로 새기고 윗면을 복련(覆蓮)으로 돌린 비신 받침[碑座]이 가로로 돌출되어 있다.


이수 또한 화강암제로, 아랫면에 2단의 낮은 받침과 앙련(仰蓮)을 돌려 새기고 4면에는 구름 속의 용틀임을 뛰어난 수법으로 새겼으며, 정상부에는 보주(寶珠)를 얹었다.


화강암제 비신은 앞면이 거의 마멸되어 위쪽 일부만 판독될 뿐이나 뒷면은 거의 판독된다. 용두화(龍頭化)된 귀부의 머리와 비신 받침, 이수 등의 조각이 신라 하대로부터 고려 초에 걸쳐 세워진 탑비의 일반적 양식을 따랐다.


비의 건립연대는 958년(광종 9) 8월로부터 960년(광종 11) 3월 사이로 추정된다. 비신 앞면의 마멸로 인해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은 미상이다. 글씨는 해서로 신라 하대부터 고려 전기에 유행되던 구양순류의 서풍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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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각연사통일대사탑비(槐山覺淵寺通一大師塔碑)


보물 제1295호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산7-1 


고려 전기의 승려인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비로, 각연사 동남쪽의 보개산 계곡을 따라 1㎞쯤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대사는 고려 전기에 중국유학을 다녀온 이로, 그가 왕실에서 불교의 교리를 강의하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다. 거북받침돌은 등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오면서 나타나게 되는 양식상의 특징이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해서체인데, 원래 새겨진 3,500자 가운데 현재는 대부분이 깍여 260자 정도만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머릿돌의 네 면에는 4마리의 용을 웅장하게 새겨 놓았는데, 그 용들이 머리를 들어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인 보주(寶珠)를 받도록 하였다.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석비중의 하나로, 고려 광조 9년(958)에 건립되었다. 받침돌에 새긴 거북머리의 양식상 변화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은 당시 석비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