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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천관사삼층석탑(天冠寺三層石塔).전남 장흥 본문

☆~ 풍경소리/전 남

장흥 천관사삼층석탑(天冠寺三層石塔).전남 장흥

푸른새벽* 2019. 1. 13. 20:08











































장흥 천관사삼층석탑(天冠寺三層石塔)


보물 제795호
전남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


보물 제795호. 높이 4m. 석탑은 법당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인 상륜(相輪)을 장식한 모습이다.


바닥돌은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조성되었다.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널돌로 조립되었는데, 각 면에는 가운데 기둥이 없이 모서리 기둥만 조각되어 있다. 덮개돌은 2장의 큼직한 널돌을 덮었는데, 약간의 경사가 있는 윗면에는 높직한 1단의 둥근 굄과 함께 각진 1단의 낮은 굄이 새겨져 있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돌로 짜여졌으며, 역시 모서리 기둥은 있지만 가운데 기둥을 새겨져 있지 않다. 덮개돌은 1장의 넓적한 돌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낮게 표시되었고, 윗면에는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다. 각 층의 몸돌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고, 지붕돌에는 밑면에 4단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1단의 굄이 있다. 윗면인 낙수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전각(轉角)에 이르러서는 점차 평박(平薄)해 졌다. 밑면의 추녀는 직선이고, 네 귀퉁이의 전각에는 반전이 커서, 지붕돌 전체가 경쾌하게 보인다. 상륜부에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노반(露盤)과 함께 둥근 공 모양의 복발(覆鉢)이 놓여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받침돌 위에 경쾌하게 보이는 탑신부를 올린 안정감을 갖춘 석탑으로, 일반형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덮개돌 밑면의 낮은 받침은 신라 석탑의 일부분이 시대가 지나면서 지방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아, 건립 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천관사삼층석탑(天冠寺三層石塔)


보물 제795호
전남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


천관사는 신라 진흥왕 때 통령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천관보살을 모셨다 하여 천관사라 하였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왜구의 칩입을 여러차례 겪은 탓에 그 규모가 점차 축소되어 현재는 천관보살을 모셨던 법당만 남아있다. 법당에서 조금 떨어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올려진 고려시대의 탑이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본떠 새겨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렸으며, 층마다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형태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얇게 4단씩이고, 윗면에 흐르는 경사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완만하며, 네 귀퉁이에서는 경쾌하게 치켜올라 세련된 느낌을 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露盤)과 둥그런 복발(覆鉢)이 한돌에 새겨져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감이 알맞아 안정감이 느껴지며 단아함을 풍긴다. 기단 각면의 가운데기둥이 생략되고, 지붕돌의 받침이 얇아져 퇴화된 수법을 보여주는데, 이는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시대가 바뀌면서 일부 양식이 지방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이 탑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