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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왕비사당석불(長興 王妃祠堂石佛).전남 장흥 본문

☆~ 풍경소리/전 남

장흥 왕비사당석불(長興 王妃祠堂石佛).전남 장흥

푸른새벽* 2019. 1. 21. 18:00
















































장흥 왕비사당석불(長興 王妃祠堂石佛)


문화재지정사항없음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연동마을


현고 110cm 되는 주형광배를 갖추고 그 전면에 양각으로 불상을 새겼다.


얼굴에 비해 유난히 크고 높은 육계와 소발의 머리를 하고 상호는 상후하박인 삼각형 얼굴이다.


통견의 법의가 거의 수직으로 처리되었으며, 목에는 희미한 삼도가 보인다. 수인은 왼손은 보이지 않고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잡고 있다. 광배는 주형광배이나 상단이 거의 원형에 가깝고 두상 주위나 광배 전면에 문양이 없는 소문으로 처리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유적총람자료*



장흥 왕비사당석불(長興 王妃祠堂石佛)


문화재지정사항없음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연동마을


왕비사당은 원래는 연지마을 뒤편 대밭에 있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현고 110㎝되는 단형경채를 작추고 있음. 전면은 양각으로 불상을 새겼으며 석불주위에는 시멘트로 감실을 만들고 지붕에는 기와를 얺었으며 처마 밑에는 연동 신당이라 당호를 새겨 놓았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왕비사당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전설이 있음. 옛날 왜구의 침입이 심할 때 지방민심을 살피기 위해 왕이 친히 이곳까지 행차하셨다. 이때 연동마을에 사는 미모의 허씨 가문의 규수를 후궁으로 맞이 하였다. 왕이 환궁하고 이 규수는 평생수절하다 일생을 마쳤다하여 마을사람들은 처음으로 이곳마을이 왕과 인연을 맺은 곳이라 하여 사당을 짓고 왕비사당 이라 이름하였다.


 
朝 鮮 時 代 官 階 嘉善大夫 : 朝鮮時代 官階 종2품으로 文●武만이 받음 中樞府 : 이조초기의 중앙관청의 하나 출납 병기 경비등의 일을맡아 봄 中樞院이라 하던 것을 세조 12년(1446년)에 중추부로 고쳐 쓰게됨, 일정한 사무없이 문부당상관으로 임직이 없는자를 우대하여 주는 의미로 두게됨.
*'함께달리는 장흥' 읍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