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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장천재(長興長川齋).전남 장흥 본문

☆~ 풍경소리/전 남

장흥 장천재(長興長川齋).전남 장흥

푸른새벽* 2019. 1. 20. 21:33














































































장흥 장천재(長興長川齋)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천관산길 148-1 (옥당리)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원래는 장천암(長川庵)이 있었다고 하는데 장흥위씨(長興魏氏)들이 조선 전기(1450년경) 이곳에 장천재를 세워 오랫동안 한학의 서재로 이용되어왔다고 한다.


현 건물은 1870년경 중건한 건물로서 한때 위백규(魏伯珪)가 수학하였던 곳이다. 위백규는 이곳, 즉 장흥부 계춘동(지금의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으로만 일생을 마쳤으며, 천문·지리·율력·의학서 등에까지 통달하였다.


이 건물은 8계단의 석재로 높은 기단을 이루고 H자형 평면에 정면 양칸에는 누각형을 하고 난간을 둘렀다.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중앙 3칸은 방을 배치하였다.


결구수법은 4칸에 주두(柱頭)와 첨차(檐遮)를 올려 지붕하중을 지탱하게 하고 지붕은 중간우동의 곡선이 양편날개의 지붕높이와 같게 하였는데 전면에서는 팔작형 합각을 이루고 있으나 배면에는 맞배지붕 형식을 취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장흥 장천재(長興長川齋)


시도유형문화재 제72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천관산길 148-1 (옥당리)


천문과 지리에 밝았던 존재 위백규(1727∼1798)가 제자를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처음 지어졌으나, 많이 파손되어 조선 고종 때(1870년경)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ㄷ자형의 구조를 하고있는 이 건물은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온돌방이고 양쪽의 앞뒤는 누마루 형식으로 난간을 설치하여 돌출되어 있다. 양쪽 누마루의 지붕은 앞면에서는 팔작지붕의 모습인데 반해, 뒷면에서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형식을 하고있어 특이하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