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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평사회전문(春川 淸平寺 廻轉門).강원 춘천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춘천 청평사회전문(春川 淸平寺 廻轉門).강원 춘천

푸른새벽* 2019. 7. 27. 20:18





























































































춘천 청평사회전문(春川 淸平寺 廻轉門)


보물 제164호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75 


보물 제164호. 앞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 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청평사는 조선 명종 때 보우(普雨, 1509∼1565)가 다시 건립한 절인데,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극락전(極樂殿)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6·25전쟁 때 불타 버렸다.


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데, 제법 넓은 편이다. 그 좌우의 협간(夾間)은 가운데칸에 비해서 매우 좁지만, 3면을 모두 벽으로 마감하여 안에 천왕(天王)이나 신상(神將) 등의 입상(立像)을 모실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문의 좌우에는 익랑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가구(架構)는 기둥 위에만 공포(?包)를 놓은 주심포(柱心包)식인데, 문이라는 성격에 알맞게 간소하게 꾸며져 있다. 곧 공포는 출목(出目)이 없이 기둥에 놓은 대접받침인 주두(柱枓) 위에 초새김한 첨차(檐遮)인 두공(頭工)을 올려 직접 주심도리(柱心道里)를 받치고 있다. 다만 첨차와 쇠서[牛舌]의 모양은 주심포계 건물의 전형적인 초기 양식을 잃고 있어서, 16세기 중반에 주심포계 건물의 양식 변천이 이미 진행되었음을 알려 준다.


천장의 가구는 대들보와 함께 마루도리를 받치는 짧은 기둥인 마룻대공(臺工)만을 둔 간단한 조립이며, 처마에는 끝부분에 덧얹는 짤막한 서까래인 부연(浮椽)도 두지 않았다. 건물 안쪽에는 가운데칸 좌우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대들보를 받치도록 한 다음, 그 위에 홍살문[紅箭門]처럼 살대를 가로로 배열하여 특이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춘천 청평사회전문(春川 淸平寺 廻轉門)


보물 제164호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75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승현선사가 세워 백암선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뒤 몇 번에 걸쳐 고치고 절을 넓혔는데 청평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명종 5년(1550) 보우선사가 이곳에 와 다시 고쳐 세운 뒤부터이다.


청평사의 회전문은 절에 들어설 때 만나게 되는 두번째 문인 사천왕문을 대신하는 것으로,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을 깨우치려는 의미의 문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앞면의 가운데 1칸은 넓게 드나드는 통로이고 양쪽 2칸은 마루가 깔려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간결한 형태로 짜여 있는데, 이는 주심포양식에서 익공계 양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건물 안쪽은 벽이 둘러진 공간에 사천왕상 등의 입상을 놓을 수 있게 했으며, 윗부분에는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만든 홍살을 설치하였다.


16세기 중엽 건축 양식 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이 절의 서쪽 언덕에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극락전이 있었는데 고려시대 건축의 수법을 보여주던 중요한 건물이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