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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대련사(禮山 大蓮寺).충남 예산 본문

☆~ 절집.절터/충 남

예산 대련사(禮山 大蓮寺).충남 예산

푸른새벽* 2019. 11. 25. 07:50

























































예산 대련사(禮山 大蓮寺)


충남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 산11 


대련사는 삼국시대인 656년(백제 의자왕 16) 의각(義覺)ㆍ도침(道琛) 두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 이름을 ‘대련사’라고 부른 것은 가까이에 있는 임존산성 안에 연못(蓮塘)과 우물(蓮井)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적 제 90호로 지정된 임존산성은 삼국통일 전쟁 때 백제 부흥군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친 곳으로서, 절에서 약 1.5㎞ 가량 떨어져 있다.

 
창건 이후 통일신라 때인 845년(문성왕 7) 무주 무염(無住無染)이 중창했다. 그런데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기의 연혁은 잘 전하지 않는데, 조선시대 후기의 연혁은 1975년 원통보전을 해제 복원했을 때 발견된 1849년이 법당 중수시 쓴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상량문을 보면, 1648년(인조 26) 중수되었다가 1691년(숙종17)에 화재로 당우 전체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745년(영조21)의 중수를 통해 다시금 절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뒤 무슨 연유에선가 또다시 절은 퇴락되어 불상도 봉안하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그리하여 승려들은 절을 떠나고, 결국 대련사는 빈 절이 되어버렸다.

 
이 때 보월 대윤(菩月大允) 스님이 중창의 서원을 세워 사람을 모으고 비용을 구하여 점차 절의 당우를 새롭게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1836년(현종 2) 노전(爐殿)을 새로 지었으며, 1843년 수선당(修禪堂)을, 그리고 1849년(헌종 15)에 보월스님이 법당을 중건함으로써 14년간에 걸친 중창 불사를 완성해내어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는 1975년에 군청의 보조금으로 법당인 원통보전을 해체, 복원했을 때 대들보 속에서 발견된 도광29년 기유(1849) 3월 16일에 쓴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확인되었다. 법당의 오른쪽, 곧 지금의 요사 건너편에 새 요사를 1999년에 완공하였다.

 
이밖에도 법당 앞뜰에는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 178호인 대련사 삼층석탑이 있다. 지대석 위에 기단과 탑신부를 올린 이 탑의 전체높이는 약 2.5m에 불과하지만, 이 절의 오랜 역사를 뒷받침해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절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왼쪽 것은 수령 700년이 훨씬 넘는 고목이다. 절에서 1.5km 거리에서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친 임존성이 있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