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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향천사(禮山 香泉寺).충남 예산 본문

☆~ 절집.절터/충 남

예산 향천사(禮山 香泉寺).충남 예산

푸른새벽* 2019. 12. 15. 21:28













































































































































































































































예산 향천사(禮山 香泉寺)


충남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57번지


향천사는 655년(백제 의자왕 15) 무렵 의각(義覺)이 창건한 고찰이다. 의각 스님은 백제의 고승으로서, 652년 일본에 건너가 백제사(百濟寺)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 해에 중국 당나라에 가서 불법을 닦았다. 스님은 이때 오자산(五子山)에서 3년동안 석불 3,053채를 비롯하여 전단향(栴檀香)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16나한상 등의 불교조각을 조성했다.

 
의각 스님은 655년 백제 사신을 따라서 귀국했는데, 귀국하면서 이들석불을 싣고 바다를 건너 왔다. 그런데 백제 오산현 북포 해안에 이르렀으나 마땅한 절터를 잡지 못해 석불들을 몇 달 동안 그대로 배에 둘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배 안에서 치는 종소리가 해변 마을에 진동했다고 하여 이 부근의 마을 이름을 종성리(鍾聲里) 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있는 절터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금오(金烏) 한 쌍이 날아와 지금의 향천사 터를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산 이름을 금오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의각 스님에 이어서는 도장(島藏) 스님이 절에 주석 하였다. 도장 스님은 백제 멸망 후 일본에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일본왕의 귀의를 받고‘동량지원수(棟梁之願袖)’라는 존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귀구해 향천사와 예산군 대흥면에 있던 송림사에 머물렀는데, 특히 698년(효소왕 7) 왕의 도움을 얻어 동관음전·서로전·동선당·서선당·향적전·향설루·서운암·관음암·부도전 타라암 등 전부 400여 칸의 전각과 암자를 지었다. 이로부터 향천사는 호서 지방의 손꼽는 명찰로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에서는 보조 지눌이 네 번째 중창을 했다. 보조국사가 희강왕2년(837) 당나라로 건너가 구자산에서 여만화상의 제자가 되어 수업한 후, 문성왕 2년(840) 석불 1,053위를 배로 모시고 환국하여, 극락전과 천불전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천불전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때 향천사에 머물렀던 영규대사와 함께 승병으로 참여한 멸운 혜희 스님은 다른 70여 명의 의승과 더불어 금산전투에 참가하는 등 왜적 격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멸운 스님은 1596년(선조 29) 절을 중창하여 전부 100여 칸에 달하는 당우를 새로 지었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보산 스님이 10여 년간 주석하면서 향천사를 중건했다. 그 뒤 1971년 극락전, 1982년 서선당과 당월당을 새로 지었고, 1985년 천불전과 나한전을 해체 복원했으며, 1986년 종각을 지었다.
*한국전통사찰정보자료*




예산 향천사(禮山 香泉寺)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사로 117-20 (예산읍)


향천사는 백제 때 옛 절이다.


읍내에서 가까우면서도 산이 제법 깊은 금오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예산 사람들에겐 가벼운 산책이나 산행 장소로 낯익은 곳이다. 대도시로 치면 경관 좋은 외곽지역에 속하는 터라, 향천사로 가는 도로 주변엔 호화로운 전원주택형 고급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향천사에는 몇 기의 부도와 9층 석탑이 있으며, 이름처럼 무척이나 깔끔한 분위기를 가진 절이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비질을 하는지 제법 넓은 뜨락 어디서고 휴지조각 하나 보이질 않는다. 대웅전 앞뜰은 물론 주차장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오솔길 또한 마찬가지이다.


향천사는 백제의 국운이 다할 무렵인 의자왕 16년 의각스님이 세웠다. 스님이 어떤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 모르나, 중국에서 만든 부처를 돌배에 싣고 그 당시 오산현 불포해안(지금 예산읍 신암면 창소리)에 도착해서 절터를 마련하고자 배에서 한 달 동안 지극 정성으로 예불을 올리던 어느 날, 금까마귀 한 쌍이 날아와 배주위를 돌고 사라지기에 뒤를 밟아보니 지금 향천사 자리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를 기이하게 여겨서 주위를 살펴보니 향내음이 그윽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산 이름이 금오산이며 절은 향천사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봄에는 백일홍이 붉게 핀 천불전이 아름다우며, 가을에는 단풍이 향천사 일대를 붉게 물들인다. 향천사 방문은 될 수 있는 한 평일에, 그것도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에 찾아가야 향천사의 참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