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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용문사대웅전(南海龍門寺大雄殿).경남 남해 본문

☆~ 풍경소리/경 남

남해 용문사대웅전(南海龍門寺大雄殿).경남 남해

푸른새벽* 2023. 8. 26. 20:32

 

 

 

 

 

 

 

 

 

 

 

 

 

남해 용문사대웅전(南海龍門寺大雄殿)

시도유형문화재 제85호(남해군)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보물 제1849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5호. 좌우 퇴칸에 비해 중앙 어칸이 넓고 매 칸마다 2구의 공간포가 놓여 있다. 공포 구성은 외3출목, 내4출목이며, 첨차의 길이가 대체로 짧다. 첨차는 마구리를 직절한 교두형으로 공안(?眼)은 없다. 주심 소첨차와 대첨차 및 출목 대첨차의 길이가 거의 같고, 소로는 첨차에 비해 폭이 좁고 높이도 낮다. 살미첨차는 앙서형[仰舌形]으로 마구리를 비스듬히 절단하였으며, 만곡된 중앙에 연화문을 조각해 놓았다.

건물의 배면 공포는 3제공 살미에만 연화문을 조각하고, 살미첨차 위의 수서는 뽀족하며 그 상부에 봉황의 머리를 새겼다. 건물 내부의 공포는 4출목이고 첨차 폭에 비해 출목간격이 넓다. 내부의 살미첨차 마구리는 운공(雲工) 형태이다. 측면 바깥기둥과 보 위에 충량을 짜고, 거기에 용몸과 용머리를 조각했다. 건물의 천장은 내출목 사이에 순각판(巡閣板)을 놓아 계단 모양으로 점차 높아지다가 4출목 끝에서 수직으로 처리하고 중앙부는 수평의 우물반자를 시설했다. 불단 뒷면에 측면 바깥 기둥열과 일치하도록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탱화를 걸어 장엄하게 꾸몄다. 처마는 겹처마로 부연(浮椽)이 길어 전체적으로 지붕이 위로 휘어져 들려 보인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다포계 불전으로 화려한 단청 및 번잡한 공포 형태와 짜임에 특색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남해 용문사대웅전(南海龍門寺大雄殿)

시도유형문화재 제85호(남해군)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용문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를 후에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라 전하나, 처음 지은 때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첨성각만이 있었으나, 조선 현종 2년(1661)에 탐진당과 적묵당을 지었다. 이렇게 절의 규모가 커지자 이곳이 보광사보다 좋은 곳이라 하여 보광사의 대웅전과 봉서루를 옮기고 용문사라 이름하였다. 지금의 건물들은 임진왜란(1592)으로 불탄 것을 다시 지은 것이며, 승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절이라 하여 숙종 때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용문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은 대체로 낮고 가운데 부분이 다소 볼록한 배흘림 기둥이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으로, 앞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2구씩 공포를 배치하였다. 처마 밑에는 절의 이름에 어울리게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공포부분에는 연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겹처마 건물로 덧서까래가 길어서 전체적으로 지붕이 위로 휘어져 들려보이며, 네귀퉁이에 추녀를 받치는 기둥인 활주가 있다. 내부의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아 장엄하였다. 

용문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법당 건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