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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驪州 高達寺址 石造臺座).경기 여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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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驪州 高達寺址 石造臺座).경기 여주

푸른새벽* 2023. 10. 21. 14:36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驪州 高達寺址 石造臺座)

보물 제8호  
경기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20-5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대좌.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57m. 상대·중대·하대와 지대석을 모두 갖춘 사각대좌로, 현재 그 위에 불상은 없고 하대석 서쪽 면에 약간의 균열과 파손이 있을 뿐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각 단은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다.

상대의 윗면은 불상이 놓여져 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1단의 각형 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그 각 면에 다섯 잎, 모서리마다 한 잎씩 모두 24잎의 아래로 복판앙련화문(複瓣仰蓮花文)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 받침은 역계단식 3단으로, 가운데 것은 둥글게 공글렸고 위아래는 각형이다.

중대는 사각형 간석(竿石)으로 되어 있다. 각 면 좌우에 우주형(隅柱形) 테를 세우고 다시 상하에 테를 두어 윤곽을 잡은 속에 큼직한 안상(眼象)을 하나씩 네 면에 조각하였다. 하대는 맨 위에 간석을 받치는 3단 받침이 있고 그 밑에 상대석에서와 같은 배열로 24잎의 복판복련화문(複瓣覆蓮花文)이 있다. 그리고 다시 그 밑에 한 단의 턱을 이룬 각형 받침이 있다. 이 각형 받침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유지하게 하며, 각 면에는 네 개씩 모두 16개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지면에는 지대석이 놓여 대좌 전체를 받치고 있다. 이 대좌가 거대한 규모의 네모반듯한 모양임에도 불구하고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팽창감이 있고 율동적인 연꽃잎의 묘사 때문이다. 반면에 중대석의 단조로운 표현은 전체적인 중량감과의 조화를 고려한 듯하다. 특히 피어오르는 상대석 연꽃의 활력 있는 표현과 간석을 받치고 있는 하대석 연꽃의 둥근 묘사 등은 사실적 조형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 수법은 이 대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있는 여주 고달사지 승탑(국보, 1962년 지정) 하대석의 연꽃잎과 매우 비슷하다. 이처럼 중앙의 꽃잎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엇비끼게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 연꽃잎 배열 방법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절터에 함께 있는 여주 고달사지 승탑과 원종대사탑(보물, 1963년 지정)이 고려 초기의 일반적인 양식임을 미루어 볼 때 이 대좌도 10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驪州 高達寺址 石造臺座)

보물 제8호  
경기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20-5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으나,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석불좌는 불상(佛像)은 없어진 채 대좌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받침돌은 위·중간·아래의 3단으로,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는데, 윗면은 불상이 놓여져 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서로 대칭되게 돌려 새겼다. 이 대좌가 사각형으로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율동적이면서 팽창감이 느껴지는 연꽃잎의 묘사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 수법은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 아래받침돌과 매우 비슷하며, 가운데 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의 양식상 공통된 특징이다. 

조각솜씨가 훌륭한 사각형 대좌의 걸작으로, 절터에 있는 고달사지부도가 고려 전기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대좌도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