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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산 사나사(楊平 龍門山 舍那寺).경기 양평 본문

☆~ 절집.절터/경 기

양평 용문산 사나사(楊平 龍門山 舍那寺).경기 양평

푸른새벽* 2023. 10. 27. 14:23

 

 

 

 

 

 

 

 

 

 

 

 

 

 

 

 

 

 

 

 

 

 

 

 

 

 

 

 

 

 

 

 

 

 

 

 

 

 

 

 

 

 

 

 

 

 

 

 

 

 

 

 

 

 

 

 

 

 

 

 

 

 

 

 


양평 용문산 사나사(楊平 龍門山 舍那寺)

양평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가평으로 가다 신애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양평군 중앙 북쪽에 용문산(해발 1175m)의 주봉 백운봉이 힘차게 솟아 있다.용문산은 고려시대까지 미지산(彌智山)이라 불리다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기품이 빼어난 명산을 알아 보았던지 용이 드나드는 산 용문산(龍門山)이라 고쳐불렀다고 한다.미지는 미리의 완성형이며,미리는 용의 새끼를 일컫는다고 한다.따라서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그 뜻에는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용문산에 윤필암.죽장암.상원사.보리사 등의 명찰들이 있었던 것도 빼어난 산세와 무관치 않겠으나,지금은 죽장암.보리사가 자취 없이 사라졌다.신애리에서 시야 가득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며 용문산으로 가다보면 함왕혈(咸王穴)이 나오고,사나사(舍那寺) 위쪽으로 함왕산성이 있다.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호족세력인 함규(咸規) 장군은 사나사 남쪽 맞은편 함왕성의 성주였다.당시 그는 양평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던 호족세력 견훤과 궁예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경계지역 성주였는데,실리와 때를 기다려 왕건에게 귀의한다.바로 이들 함씨 세력이 웅거하던 곳이 함공성(咸公城),또는 함씨대왕성(咸氏大王城)이다.함공성은 당시 2만 9058척이었으나,지금은 정문과 그 좌우로 이어지는 석축만 남아 있다.

용문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천은 옥 같이 맑고 투명하며,용천은 곧 미르내라 불렀으니 절골이라는 뜻이다.그 용문산 자락에 안긴 사나사는 비로자나 법신 부처님이 상주해 있다.신애2리 마을 초입에서 사나사까지는 약 3.5km.지금의 사나사는 작은 절에 불과하지만,옥천1구 옥정(玉井)마을과 옥천2구에 있는 삼층석탑.석조불좌상.당간지주 등이 옛 사나사의 석물들이었다고 전해진다.그렇다면 예전 사나사는 가늠하기 쉽지 않은 대찰이었을 것이고,마을에 전해오는 얘기로는 사나사 이전에 대월사(大月寺)가 있었다고도 한다.

신애리에서 용천2리를 지나 산길로 오를수록 계곡물소리가 청량하다.계곡물소리는 여름에는 시원하게,겨울에는 따스하게 들리니 그 또한 예사로운 조화가 아니다.그렇게 자연을 벗삼아 오르다보면 예전 승가고시가 치러지던 서울 봉은사의 일주문을 근년에 이곳으로 옮겨온,키가 훤칠하게 커서 맞배지붕이 더욱 견고해뵈는 일주문이 찾는 이를 맞는다.일주문을 넘어서면 훤하게 드러나는 분지가 있는데,이런 산중에도 이렇게 평형하고 넓은 분지가 마련돼 있다는 자연의 조화가 새삼 감동스럽기도 하다.

절은 아담하고 조촐한데다 한적해서 더욱 좋다.마당 건너 정면에 대적광전이 있고,그 뒤로 가파르게 치솟은 용문산봉이 마치 부처의 광배를 이루듯 장엄하게 서 있다.대적광전 앞 오른쪽으로 절 규모에 어울리는 예쁘장한 삼층석탑과 원증국사 석종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가 있으며,양 옆에 산신각과 함씨각이 있다.절 아래편에 함왕혈이 있고,이 절에 함씨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나사는 아마도 함규 장군의 원찰이 아니었을까.게다가 함규 장군이 고려의 개국공신이었고,사나사가 개국 초기인 923년(태조 6)에 창건됐으니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사나사는 태조의 국정자문위원 격이었던 대경국사 여엄(大鏡國師 麗嚴.862~930)이 제자 융천과 함께 창건했다.중국에서 돌아온 대경대사에게 나라일을 의논하던 태조는 어느 날 사나사 동편 보리사에 주석케 했음을 
『보리사대경대사현기탑비문(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文)』에 밝히고 있다.그렇다면 대경대사가 사나사 이전에 있던 대월사 창건에 가까운 규모로 중창했을지도 모른다.보리사터에 있던 대경대사 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1367년(공민왕 16) 태고 보우대사가 140여 칸 규모로 중창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고,1698년(숙종 24) 소규모의 법당을 재건했으나,1907년 의병과 관군의 충돌로 또다시 흔적 없이 소실되고 만다.1909년과 1937년에 중건했으며,현재 정면 4칸 측면 3칸의 대적광전은 1993년에 새로 지었으니 탑도 절도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양평 사나사(楊平 舍那寺)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사나사(舍那寺)는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용문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경기도 동쪽에 위치한 양평군의 중앙 북쪽에 군(郡)의 주산이라 할 용문산(龍門山, 1175m)의 주봉인 백운봉이 우뚝 솟아 있다. 용문산은 본래 고려 때까지 미지산(彌智山)이라 불렸는데 조선시대 때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경기도 최고의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래서 용문산에는 예로부터 사나사를 비롯하여 윤필암·죽장암·상원사·보리사 등의 명찰이 있었다. 절이 위치한 옥천면 용천리는 용문산으로부터 흘러온 샘물이 구슬같이 맑아서 옥천(玉泉)이라 하는데, 절은 용문산에서 내려오는 용천[미르내], 곧 절골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옥천리에서 용천리를 거쳐 이 절골로 백운봉을 향해 가다보면 함왕성(咸王城)이 나오고 바로 그 위에 절이 있다. 이 절골은 용문산 서북 기슭 옥천리에서 용천리로 이어지는데 옥천리 일대에는 많은 불교 유적이 있어, 옥천리2구에 사찰의 문 앞에 표식으로 세웠던 당간지주가 하나 있고, 또 옥천리1구의 중심지인 옥정(玉井) 주변에 삼층석탑과 석조좌불상 등이 널려 있다. 따라서 이곳이 절터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을에서 전하는 이야기로는 사나사의 전신인 대월사(大月寺) 터라 한다. 이처럼 사나사는 대월사로 창건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지금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한국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