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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경북 안동 본문

☆~ 절집.절터/경 북

안동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경북 안동

푸른새벽* 2006. 4. 29. 00:27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는 절집으로 유명합니다.바로 봉정사 극락전이지요.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훨씬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봉정사 극락전은 1972년에 중수하기 위해 완전히 해체했을 때 이곳에서 상량문(上樑文.집을 새로 짓거나 구친 내력과 날짜,시간 등을 적은 글)이 발견됐는데 이에 따르면 부석사 무량수전을 처음 지은 때보다 13년 전에 중수한 적이 있다고 돼 있습니다.


봉정사는 극락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들러볼 만한 천년고찰입니다.의상대사는 자신의 새로운 불교 사상,즉 화엄종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영주 부석사를 본거지로 삼은 반면 봉정사는 교두보로 삼은 절집입니다.그런 까닭에 봉정사는 부석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신라 화엄 사상의 순수성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절집이라고 합니다.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창건한 봉정사는 희상대사가 지었다고도 하고 능인대덕(能仁大德)이 지었다고도 하는데 의상대사의 큰제자인 능인 스님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절집에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봉정사가 자리잡은 천등산 골짜기에 천등굴이라고 불리는 바위동굴이 있었습니다.이 동굴 안에서 깨달음을 향한 정진에 몰두한 능인스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온갖 방법으로 미혹에 빠뜨리려던 선녀는 마침내 스님의 굳은 의지을 확인하고 도움이 되고자 '옥황상제의 등불'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스님은 그 등불을 받은 굴,즉 천등굴(天燈窟)이라 불렀으며 아예 산이름 까지 천등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합니다.


능인 스님은 수행을 마치고  종이로 봉황을 접어 하늘로 날렸습니다.그러자 봉황은 한참을 하늘에서 머물다 지금의 봉정사 자리에 날아가 앉았습니다.그곳에 스님이 절집을 짓고 ,봉황이 머물렀던 절이라는 뜻에서 '봉정사'라 한 것입니다.

*고규홍 지음 '절집나무'중에서*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봉정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인 682년에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창건설화가 재미있다.영주 부석사에 자리잡은 의상이 종이로 봉황을 만드어 도력으로 날려보내니 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절을 지어 봉정사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또 한편으로는 의상이 기도를 드리려고 이 산에 오르자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히고 청마(靑馬)가 길을 인도하여 이 자리에 다다르게 했으므로 산을 천등산이라 하였고 청마가 앉은 곳에 절을 지어 봉정사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그러나 극락전의 상량문 기록에 따르면 봉정사는 의상의 제자인 능인이 창건했다고 하니 신기한 이야기에 의상의 명성을 덧붙인 것인지도 모른다

창건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 외에는 19세기에 몇 번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고 절에 전해오던 사지(寺誌)나 경전이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버려 봉정사가 지닌 자세한 역사적 내력은 알 길이 없다.다만 해체 수리 과정에서 이 절의 극락전이 14세기 중엽에 중수된 건물임이 밝혀지면서 그 전까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졌던 부석사 무량수전의 자리를 빼았았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목조건물을 지닌 절로서의 유서 깊음을 조용히 자랑할 따름이다.고려 중엽의 건물인 극락전,조선 초기 건물인 대웅전, 또 조선 후기 건물인 고금당과 화엄강당이 있음으로해서 이 절은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계보를 고스란히 간직해 내려온 건축박물관 같은 특성마저 지니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면 우거진 나무숲이 아늑한 봉정사가 나온다.한 길 높이로 치솟은 참나무 숲이 참으로 싱그러운 기운을 자아낸다.새로 세운 일주문을 넘어서면 해묵은 참나무들이 하늘을 가리 만큼 우거져 있다.그곳을 지나면서 가파른 계단 위쪽으로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위엄을 갖춘 누문 건물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주변이 아늑하면서도 앞이 트인 자리에 앉은 봉정사는 환한 햇빛을 온몸에 가득 받아내고 있어,오랜 나무결도 우중충해 보이지 않는다

좀 숨이 차다 싶을 만큼 계단을 올라가면 봉정사 강당인 덕휘루(德輝樓) 밑으로 난 문을 마주하게 된다.이처럼 누각 아래로 들어가도록 입구가 만들어져 있는 방식은 경사진 지형에 지어진 집이나 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건물의 아래로 들어가려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자세도 숙연해지게 마련이니 미처 깨닫지 못한는 사이에 건물은 우리를 겸손한 자세로 만들어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이 덕휘루는 1층은 문이지만 2층은 누마루이다.현재는 법고와 목어가 걸려 있고 봉정사의 역사가 적힌  편액들도 있다.덕휘루 밑을 들어서자마자 대웅전 영역이며,그 서쪽 공간이 극락전 영역이니 봉정사의 큰 두 축을 이룬다.덕휘루를 들어서서 바로 대웅전 마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기단이 한 단 놓여 몇 계단 올라가야 하도록 되어 있다.옆쪽인 극락전도 마찬가지이다.그리고 이처럼 대웅전과 극락전이 거의 동등한 위치에 옆으로 나란히 있어 한 절에 중심이 둘 있는 배치는 매우 드물다.극락전은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양옆에 거느리며 아담한 마당을 누리고 있고 대웅전은 화엄강당과 승방인 무량해회(無量海會)를 양쪽에 거느리고 앞에 덕휘루를 내세우고 있다.무량해회 건물을 돌아 너른 마당 뒤쪽으로는 아늑한 암자 영산암으로도 갈 수 있다

안동의 북쪽인 서후면 천등산은 부석사가 있는 태백산에서 일직선으로 죽 내려오는 한 맥에 있다.그러나 봉정사에 막상 올라보면 절이 앉은 자리나 그 앉음새는 부석사와는 사뭇 다르다.부석사가 멀리 내다보는 조망이 그 백미라면 이곳 봉정사는 산들에 빙 둘러싸인 더없이 아늑한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차장에서 올라가다가 보면 봉정사 일주문 못미처 왼쪽 계곡에 작은 바위가 이루는 폭포가 있어 잠시 눈을 즐겁게 하는데 그 건너편에 정자가 한 채 있다.퇴계 이황이 봉정사에 묵으면서 공부할 때 자주 나가 쉬었던 곳이라고 하며 낙수대라는 밋밋한 본디 이름을,그곳에서 듣는 물소리가 옥을 굴리는 듯하다고 하여 명옥대(鳴玉臺)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