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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등운산 고운사(騰雲山 孤雲寺).경북 의성 본문

☆~ 절집.절터/경 북

의성 등운산 고운사(騰雲山 孤雲寺).경북 의성

푸른새벽* 2006. 4. 14. 00:11

 

 





 









 

 





 





 





 









 

 





 





 









 





 





 

 





 





 









 

 





 





 





 





 





 





 





 









 

 





 





 









 





 

 









 

 





 





 





 





 





 









 

 









 

 





 





 









 

  

등운사 고운사(騰雲山 高雲寺)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뜻의 등운산(騰雲山).산이름에 걸맞게 절 이름도 '높이 뜬 구름' 고운사(高雲寺)이다.조계종 제16교구 본사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거창한 규모는 아니다.오히려 681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던 때의 아늑한 절집 분위기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분위기이다.한때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857~?)이 머물면서 승려 여지(如智)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립한 일이 있는데 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치원의 아호를 따서 '孤雲寺'로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신라 하대 헌강완 때에는 선각국사가 주석하여 석조여래상과 오층석탑을 조성했다.


고려 때는 화엄종이 쇠퇴함에 따라 인근 부근의 부석사 등의 사세가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이곳 고운사가 번영하여,영주.선산.금천.군위.영천 등 인근 14개 고을에 걸친 절들을 관할하는 큰 절로서 규모도 366칸에 이르렀다고 한다.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크고 작은 불사가 끊임없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세가 계속 번창했었던 듯하다.임진왜란 때에도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 삼았다고 한다.숙종 22년(1695) 중건불사가 크게 있었으나 1835년 불탔고,다시 중창되었으나 절 규모를 그다지 크게 일으키지는 못했던 듯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조계종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현재 안동.의성.영주.봉화.청송의 60여 절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다.


고운사는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이라 공부하기에는 그만일 듯싶다.그래서인지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찾아올 뿐 아니라 '고운사에 와서 글아는 체하지 말라'는 속설도 전해 내려온다.


울창한 송림을 지나 절 입구에 이르면,언제 그런 산골을 거쳐왔냐 싶게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길게 자리한 평지에 고운사가 펼쳐져 있다.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계곡가에 2층 누각 가운루(駕雲樓)가 보인다.역시 '구름 위에 올라탄다'는 뜻이니,계곡에 발 디디고 있는 가운루가 어찌 구름을 탄다는 것일까? 해답은 멀지 않다.가운루에 올라서서 계류에 비친 구름을 내려다보면 절로 구름 위에 올라선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새로 지어진 전각이 많은 고운사에서는 비바람에 견뎌온 세월을 간직한 운치 있는 건물이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이다.처음에 세운 것은 신라 하대에 최치원이 이 절에 머물 때라고 하나 지금의 건물은 언제 지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다만 1899년에 중수한 것으로만 확인된다.


가운루 안쪽으로 고운사의 중심공간이 펼쳐진다.가운데에 있는 우화루는 종무소로 쓰이는데,우화루를 둘러싸고 석비가 있는 정자각과 요사채.범종루들이 있다.조금 떨어져서는 깊숙한 곳에 대웅보전.극락전.관음전 등이 있고 그 뒤쪽에 명부전이 있다.극락전은 현존하는 고운사의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한 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다만 학자에 따라 임진왜란 이전이 조선 중기 건물로 보기도 한다.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1670년에 창건된 명부전은 지장도량인 고운사의 중요한 법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극락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설치한 연수전(延壽殿)이 눈에 띈다.이 연수전은 1744년에 영조가 하사한 어첩(禦帖)과 불구(佛具),보기(寶器)등을 모시기 위해 처음 지었던 것이다.왕실의 원당으로 건물이 지어진 것은 뜻밖이나 영정조 대에는 전국의 이름난 절에 나라의 원로들을 대접하는 뜻에서 기로소(耆老所)의 원당을 설치하는 것이 한때 유행했었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현재의 건물은 1907년에 중창된 것으로,영조 때의 예에 따라 연수전을 다시 지어 당시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의 안녕을 축원하였다고 한다.


계곡을 건너 오른쪽에는 고즈넉한 약사전 건물이 있는데,그 안에 모신 석조여래좌상은 통일 신라시대에 조성되어 고운사의 오랜 내력을 말해준다.뒤쪽에 있는 나한전 앞에는 무너져내린 석탑 한 기가 근근히 버텨서 있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