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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中爐殿구역 본문

☆~ 절집.절터/경 남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中爐殿구역

푸른새벽* 2006. 6. 5. 00:27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中爐殿구역

불보사찰로 널리 알려진 영축산 통도사의 가람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일주문이 있는 입구 쪽부터 말하자면 우선 영산전 약사전 극락전으로 이루어진 하로전 지역이 있다.그 다음 일주문을 지나면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이 일렬로 서 있는 중로전 지역이 있고마지막으로 대웅전과 금강계단으로 이루어진 상로전 지역이 있다.


노전이란 사찰의 중요한 불전을 관리하는 노전 스님이 기거하는 곳으로 통도사에 상중하 3개의 노전이 있다는 것은 3개의 가람이 합쳐진 복합 사찰이라는 의미도 된다.그만큼 통도사 가람은 거대하고 복잡해서 통도사 건축을 제대로 해석할 수만 있다면 한국 사찰 건축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바로 중로전 지역이다.우선 3동의 커다란 건물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보통 이런 규모의 불전들이면 -하로전의 세 불전들과 같이- 서로 직각되게 놓여 가운데 마당을 형성하면서 가람을 이루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앞뒤 일렬로 놓이다 보니 전각과 전각 사이에는 넓은 마당이 없고 각 건물로 들어가려면 앞 건물의 옆면을 돌아 들어가야 하는 어색함이 있다.또한 용화전 앞에는 밥그릇과 같이 생긴 이상한 탑이 서 있어서 궁금증을 더한다.


중로전 가장 뒤쪽에 있는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는 화엄 신앙의 불전이다.그 앞의 용화전은 미륵불을 모신 불전이고 가장 앞의 관음전은 명칭 그대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건물이다.용화전 앞에 서있는 사발 모양의 탑은 일명 봉발탑이라고도 불리운다.'바리때를 받치고 있는 탑'이란 뜻이다.이런 모양의 탑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이름부터 호기심을 돋운다.


미륵은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고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하여 도솔천에 올랐다는 인물이다.사람들은 그가 보살이 되어 도솔천에 올랐다고 믿었다.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 지상의 중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명상에 잠겨 있다.이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유명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미륵보살은 도솔천에 오른 지 56억 7천만년 후에 다시 지상에 내려와 세번의 설법을 베풀어 지상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부처다.그리고 세번의 설법은 용화수 아래서 설해지기 때문에 용화삼회라 이름한다.미륵불의 세계는 당연히 용화세계이며 용화전은 용화세계를 재현한 불전이다.


미륵불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부처이며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메시아다.그러나 문제가 있다.먼 훗날 미륵불이 하강한다고 해도 무지한 중생들이 어떻게 그를 미륵불로 믿어줄 것인가?무언가 징표가 필요했다.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수제자인 가섭에게 자신의 바리때와 가사를 주면서 일렀다."가섭아 너는 열반에 들지 말고 내 바리때와 가사를 간직하고 있어라 훗날 미륵불이 하강하여 용화세계를 열 때 그것을 바쳐라"

누구보다 먼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섭에게는 섭섭한 일이지만 미륵불을 증거하기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가섭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당부대로 지금도 계족산에서 바리때를 들고 서서 미륵불이 하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통도사의 용화전과 봉발탑은 가섭이 미륵에게 바리때를 바치는 바로 그 용화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건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중로전의 세 건물은 동시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대광명전은 신라시대에,용화전과 봉발탑은 고려시대 그리고 관음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중로전 일대가 완성되기 까지에는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이 걸렸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건축적 질서가 숨어 있다.가장 먼저 자리잡은 대광명전은 가장 크고 높다.용화전은 그보다 약간 작고 낮게 건축됐다.먼저 세워진 뒤쪽의 대광명전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 배려한 것이다.가장 나중에 세워진 관음전은 아예 3칸으로 칸수도 줄이고 지붕도 가장 낮게 만들었다.앞뒤로 나란히 서있지만 새 건물이 옛 건물을 가리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관음전 앞에 서 보면 3동의 불전들이 이루는 관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되 결코 옛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정신 이것이야말로 한국 건축의 위대한 윤리요,현대가 받아들여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김봉렬 지음 '가보고 싶은 곳,머물고 싶은 곳'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