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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영암사지(靈巖寺址).경남 합천 본문

☆~ 절집.절터/경 남

합천 영암사지(靈巖寺址).경남 합천

푸른새벽* 2006. 11. 24. 22:34

 





 





 





 

 









 





 

 





 





 





 





 





 









 

 





 





 





 









 





 

 





 





 





 





 





 





 





 





 









 

 





 









 





 

 





 





 





 





 





 





 

영암사터(靈巖寺址)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59


바위 골격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황매산(黃梅山) 아래 넓게 펼쳐진 폐사지(廢寺址)가 자리잡고 있다.합천 영암사(靈巖寺)에 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없지만 부분적인 기록과 현존하는 석조유구(遺構)들의 솜씨로 미루어 대략 신라 후기인 8세기 경에 조성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현재 드러난 유구로만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높은 축대를 쌓아 조성한 3단의 대지를 동서축상에 일렬로 배열하였다.석축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장대석 사이사이에 긴 팔뚝돌을 결구하여 석축의 구조를 보강하였다.일명 돌못이라고도 부르는 이 부재는 머리 부분에 장대석들을 걸고 긴 몸돌을 흙 속에 묻음으로써 장대석들이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는 구조로 경주 석굴암이나 월정교터 축대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라시대의 기법이다.


가장 아랫단의 구성은 명확지 않지만 회랑을 두른 큰 영역임은 확인할 수 있다.중간단은 중문이 있던 곳으로 축대 위에 3면으로 회랑을 둘러 폐쇄된 영역을 이루었고 마당 가운데에 석탑을 세웠다.가장 윗단은 금당이 있는 곳으로,전면 중앙의 석축이 돌출되어 있고 돌출부 중앙에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이 세워졌다.돌출 석축 좌우에는 활처럼 유연하게 휘어진 돌계단이 놓여져 있다.한 쌍의 돌계단은 통돌로 이루어졌는데,이런 모양의 계단이나 중심 돌출부 석축의 모습은 매우 희귀하다.


금당은 전면 5칸의 크기이지만 적어도 세 차례의 변화가 있었던 듯 높이와 간격이 다른 주춧돌이 남아 있다.금당 북쪽 40m지점에서 발굴된 북 건물터가 강당터일 가능성도 있고 남문지도 발견되었다.금당에서 남서쪽 숲 속에 또 다른 건물터가 남아 있어서 서금당터로 부르는데 이 곳에는 비석 귀부가 2기 남아 있다.


영암사터의 가람배치법도 특이하지만 매우 정교하고 장식적인 석물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활 모양의 계단,섬세하면서도 우아한 자태의 쌍사자석등,금당 기단과 계단에 새겨진 생생한 사자상과 화려한 연화인동(蓮華忍冬)무늬 등 불국사 못지않은 신라 전성기의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하고 있다.영암사의 특이한 입지와 배치,화려한 상징물들로 인해 이 절이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도량(密敎道揚)이었다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다.

*김봉렬 지음 '불교 건축'중에서*

 

영암사를 이야기할 때에는 황매산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는다.
산이 워낙 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전경을 볼 때 방해가 되기도 한다.
산과 함께 절터를 보면
절터가 왜소해 보이거나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