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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강화 전등사 은행나무.인천 광역시 본문

☆~관심.호기심/나무 이야기

강화 전등사 은행나무.인천 광역시

푸른새벽* 2006. 9. 28. 07:23

 

 


전등사 은행나무

 

스님들은 온 산과 산 아래 마을까지 헤집고 다니며 부지런히 은행 열매를 주워 모았습니다
가을이 다 가도록 은행을 주웠지만 목표량에는 태부족입니다


숭유억불의 조선 후기 때 이야기입니다
불교와 관계된 기관이라면 무조건 탄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이곳 강화도 전등사에는 늠름하게 잘 자라던 은행나무가 있었습니다
탄압의 구실을 찾던 조정에서는 전등사 스님들에게 은행 열매의 공출량을 지정,부과했습니다


조정에서 부과한 공출량은 이 나무에 달리는 은행만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양이었지요
스님들은 이를 채우기 위해 온 산을 돌아다니며 은행 열매를 주웠습니다
그러나 공출량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늘 모진 탄압을 받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스님들은 아예 이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관에서는 공출을 부과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스님들은
가까운 강화도 고려의 명찰인 백련사에 주석하던 추송선사를 모셔와 삼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회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아에서는 포졸들을 보냈습니다
전등사의 기도회 모임을 감시하러 나온 포졸들은
멀쩡히 암나무로 자라나던 은행나무를 수나무로 변하게 해달라는 스님들의 터무니 없는 기도를 비웃었지요


청아한 목탁 소리와 함께
스님들의 기도가 간절하게 지속되는 사이로 포졸들의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기도를 마무리하던 추송선사는 목탁을 거두고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해동 조선국 강화도 전등사에서 삼일 기도를 지성으로 봉행하니
이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되게 해주기를 축원하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스님의 외침이 산을 울리며 멀리 퍼지기 시작한 순간
기도회를 비웃던 포졸이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며 땅에 나동그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우박을 머금은 비가 퍼부었습니다
곧 이어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잎을 떨구고 파르르 떨었지요


그 기도회가 있은 뒤로,
전등사의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성을 전환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조정에서는
그 은행나무의 신통력을 생각하며 더 이상 전등사와 그 곳의 스님들을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은행나무는 7백 살이나 된 지금까지 전등사의 앞마당의 조금 아래 쪽 언덕에 서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나무의 기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절집에서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잔가지들을 쳐내는 가지치기 작업을 했습니다
가지들을 떨어내고 굵은 줄기만 남아 있는 나무여서 다소 볼품이 없어진 느낌입니다만
그 줄기에서 깊은 연륜과 신통력을 느낄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나무의 성 전환은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요?
특히 전등사의 은행나무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온 큰 나무가 갑자기 성을 바꾸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궁금해집니다


물고기나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의 경우
드물게나마 자동적인 성전환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또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제초제가 성 전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도 합니다
그밖에
식물 가운데 모시풀은 햇볕을 쬐는 시간에 따라 암수 전환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전등사 은행나무와 같은
큰 나무의 성 전환 사례는 과학적인 근거를 온전히 갖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전등사 은행나무의 전설을 불합리한 이야기라고 몰아붙이기만 할 일은 아닙니다
이는 불가(佛家)의 도량인 절집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신화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전등사가 자리잡고 있는 마니산은 단군과 관련한 우리 민족의 신화가 깃들인 곳이고
근현대사를 통해 외침의 영향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던 곳이지요
이런 민족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의 불자(佛者)들은
절집 안의 모든 조형물들을 신성하게 여겼을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인 은행나무 또한 신성한 나무로 여겼을 테지요


어찌보면 전등사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은
과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이 절을 현대에까지 지켜온
불자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고규홍 지음 '절집나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