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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강원 원주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강원 원주

푸른새벽* 2006. 11. 3. 23:48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는
전체 높이 4.55미터,비신 높이 2.95미터,너비 1.41미터로
선종 2년(1085년)에 건립되었고
고려시대 석비를 대표할 만한 걸작으로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지광국사현묘탑비를 바라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구름 무늬가 있는 지대석에는 거북이 올라 앉아 있다
용머리는 목을 길게 빼고 목에는 특이하게 비늘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주둥이가 길쭉한 용머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비스듬하게 돌로 받친 둔턱 받침까지도 있어
섬세한 곳까지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마치 바둑판처럼 조각된 거북의 등에는 칸칸마다 임금 왕(王)자가 새겨져 있고
거북의 등 가운데로 연꽃의 받침대를 마련하고 비신을 세웠다


비신은 연한 청색의 점판암에 글을 새겼으며
옆면에 꿈틀거리는 용을 정교하고 깊게 조각하였다
마치 용이 하늘로 금방이라도 뛰어 오를 것 같은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비신의 상단부는 가운데에 '지광국사현묘탑비'라고 쓴 제액(題額)이 있고
제액 양옆으로 사각의 틀을 만들어 그 안에 봉황을 새겨 넣었다


비문은 고려초 문장가인 정유산(鄭惟産)이 지었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 안민후(安民厚)가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단아하게 썼다


비신 맨 위에는 안상을 파고 나무.토끼.새 등을 조각하였고
그 주위에는 산.구름.비천.봉황 등이 새겨져 있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안상 주변에는 온통 화려한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이 새겨져 있다
갓 모양으로 생긴 이수는 모자를 쓴 듯한 형태이며
네 귀에 귀꽃이 새겨져 있다
이수 중앙에 상륜부를 두어 보주를 얹었다

*김남용 지음 '국보와 보물이 있는 옛 절터이야기'중에서*

 

지광국사 해린(海鱗.984~1070)은 여덟 살에
법천사에 주석하였던 관웅(寬雄) 대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으며
그 후 개경의 해안사(海安寺) 준광(俊光)방장(方丈)에게서 머리를 깎고 불문으로 들어섰다
스물아홉 살에 숭교사(崇敎寺)를 창건할 때 감독을 맡았던 은공으로 그 절의 초대 주지를 맡기도 했다
고려 현종은 그를 중대사,삼중대사로,정종은 승통(僧統)으로 받들었으며
문종은 왕사로 모셔 어가(御駕)를 함께 타고 다니며 법화경과 유식학 강의를 들었다


특히 문종은 뒤에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이 된 자신의 넷째 아들을
지광 국사가 머물던 현화사(玄化寺)로 보내 불문에 들게 하기도 했다


국사가 법천사로 돌아온 것은
문종 21년인 1067년이었으며 문종 24년인 1070년 10월 23일 입적했다

 *이지누 지음 '절터,그 아름다운 만행'중에서*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국보 제59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74-2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

 

 

 

*경복궁 뜰에 있는 지광국사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