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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정선 정암사수마노탑(淨岩寺水瑪瑙塔).강원 태백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정선 정암사수마노탑(淨岩寺水瑪瑙塔).강원 태백

푸른새벽* 2006. 12. 17. 23:23

 

 

 

 

 

 

 

 

 

 

 

 

 

 

 

 

 

 

 

 

정암사수마노탑(淨岩寺水瑪瑙塔)


정암사의 가장 높은 곳,
적멸보궁 뒤쪽으로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만든 대지위에 서 있어
경내 또는 절 입구 등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瑪瑙石)으로 만든 탑이라하여 마노탑이라고 한다
마노 앞에 수(水)자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서해 용왕이 마노석을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주었기에 '물길을 따라온 돌'이라 하여 덧붙여진 것이다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와 백성이 복되게 살기를 기원하며 세워졌다


전체 높이가 9m에 이르는 칠층모전석탑으로
탑 전체가 길이 30~40cm,두께 5~7cm크기의 회색 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아졌다
언뜻 보면 벽돌을 쌓아올린 듯하다


1층은 마노석을 15단으로 쌓아 높이 103cm,한 변이 178cm되게 만들었으며
층수가 한 단계 높아질수록 그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
탑의 1층 남쪽면 중앙에는 1매의 판석으로 짜여진 문비가 있으며 문비에는 철제 문고리도 장식돼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에 층단이 있는 전탑의 양식을 따랐으며 추녀 폭은 전탑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편이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1층에서는 7단으로 되어 있으나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한 단씩 줄어 7층에서는 1단이 되었고
낙수면의 층단도 1층에서는 9단이지만 층을 거듭할수록 한 단씩 줄어 7층에서는 3단이 되었다


상륜부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노반 위에 갖가지 청동제 장식이 완전하게 얹혀 있다
윗부분에는 네 가닥으로 돌출된 끝에 풍경이 달려 있다
몇 군데를 빼고는 각 지붕돌의 네 모서리에 풍경이 가지런히 매달려 있다
바람이 불어 날아들면 풍경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고요한 산사를 휘감아돌아 몹시 소슬하게 느껴진다
깊은 성찰을 주는 소리이다


전체적으로 그다지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정제되어 있고 수법이 정교하다
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화무늬나 안상무늬는 고려 시대의 특징을 나타낸다
정암사 창건 당시에 자장율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지만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정암사 비명에 의하면
18세기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지난 1972년 해체.복원된 이래 지반이 기울고 있어
전면 보수가 다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1972년 해체 당시 탑지석(塔誌石)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본래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구해온 석가의 신물(信物.사리.치아.염주.佛掌珠.貝葉經등)을
'세 줄기의 칡이 서린 곳'에 나누어 각각 금탑,은탑,수마노탑에 모셨다고 하는데
후세 중생들의 탐욕을 우려한 자장율사가
불심이 없는 중생들은 금탑과 은탑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게 숨겨버렸다고 한다
정암사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으니
그간의 어디에 금탑과 은탑이 있을 것이라고도 전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정암사수마노탑(淨岩寺水瑪瑙塔)


보물 제410호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214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돌벽돌의 일반적인 크기로 보아 그리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세련되고 수법 또한 정교한 탑이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眼象)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언제부터 전해진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