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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獅子頻迅寺址 四獅子石塔).충북 제천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제천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獅子頻迅寺址 四獅子石塔).충북 제천

푸른새벽* 2006. 12. 21. 01:12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獅子頻迅寺址 四獅子石塔)


사사자석탑은
상층기단부에 네 마리의 사자상과 비로자나불을 배치한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대석,하대석,상하층기단,탑신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부는 본래 9층이었지만
지금은 5층 몸돌까지만 남아 있다


하대석에는 윗부분에 두터운 테가 조각되었고 각 면마다 안상이 세 개씩 새겨졌다
이 안상들은 아래쪽의 선이 안상의 안쪽으로 말려들어 꽃 모양으로 솟은 고려시대 특유의 수법을 보인다
하층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었고 두툼한 갑석이 올려졌는데
갑석의 아랫면 가장리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깎여 있다


상층기단의 형태로 하여 이 탑은 사사자석탑으로 불린다
사방을 경계하듯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자상 네 구를 모서리마다 배치하여 윗부분을 받게 하고
그 한가운데에 두건을 쓰고 지권인(指卷印)을 한 비로자나불상 한 구를 놓았다
사자들도 비로자나불도 모두 아담한 체구에 살집이 두둑하다
비로자나불의 뒷머리에 나비매듭으로 묶어 놓은 두건이 재미있다


상층 기단 갑석의 아랫면은 하층기단 갑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완만하게 안으로 깎여들었고
비로자나불의 머리 위인 한가운데에는 활짝 벌어진 연꽃 하나가 도톰하게 새겨졌다
윗면에는 연꽃잎 열여섯 장을 엎어 새긴 높직한 굄을 두어 1층 몸돌을 받게 하였는데
이 또한 고려시대 석탑에서 볼 수 있는 특색이다


탑신부에서는 몸돌이 5층까지,지붕돌이 4층 까지 남아 있다
1층 몸돌이 유난히 높고 그 위로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몸돌마다 모서리에 기둥이 새겨졌다
지붕돌 윗면의 경사는 아주 완만하며 아래쪽에 층급받침이 3단 씩이다
지붕 모서리가 활짝 들어올라가서 전체적으로 경쾌하지만 가벼운 느낌도 든다


이러한 사사자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때 등장하였으며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최초의 예이다
한편, 이 탑은 특수한 형식 못지않게 건립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어
다른 석탑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하층기단 정면에 이 탑의 내력을 밝힌 명문이 모두 10행 79자의 해서(楷書)로 적혀있다
명문의 대평 2년 즉 고려 현종 13년(1022)에 '몹쓸 적들이 아주 물러갈'것을 기원하며
월악산 사자빈신사에 구층석탑을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종 당시는 거란족이 빈번히 고려로 침입하던 때였으므로 이 탑은 불력으로 거란족의 침탈을 막아
태평안민을 기원하고자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탑의 높이는 4.5m이고 보물 제 9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


보물 제94호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002 


사자빈신사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상·하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4층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기단은 글이 새겨져 있어 탑의 조성 경위를 알 수 있으며 위기단은 사자 4마리를 배치하여 탑신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네 모서리에 한마리씩 배치한 사자의 안쪽 공간에 비로자나불상을 모셔 두었다. 앉은 모습의 비로자나불상은 특이하게도 두건을 쓰고 있으며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의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으로 이 밖에도 몇 기의 탑이 더 전해지고 있다. 현재 탑신에는 지붕돌이 4층까지 남아 있는데, 아래기단에 있는 글을 통해 원래는 9층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고려 현종 13년(1022)에 만들어진 이 탑은 연대가 확실하여 각 부의 구조와 양식, 조각수법 등 다른 석탑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중요한 탑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