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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터 삼층석탑(遠願寺址三層石塔).경북 경주 본문

☆~ 풍경소리/경 북

경주 원원사터 삼층석탑(遠願寺址三層石塔).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6. 12. 25. 23:48

 

 

 

 

 

 

 

 

 

 

 

 

 

 

원원사터 삼층석탑(遠願寺址三層石塔)


동서 쌍탑인 두 삼층석탑은 도괴되었던 것을 1933년에 복원한 것이다
상하 기단 면석에 탱주 2개가 조각돼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상층 기단과 1층 몸돌에는 각기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을 강하게 조각하는 등
화려한 장식을 보이고 있다


상층 기단 한 면에 3구씩 조각된 십이지신상은 연화대 위에 앉아 있는데
평복의 옷자락을 아름답게 휘날리며 앉은 모습이 고요하다
두 손은 앞 가슴에 모은 자세로 강한 수호신 이미지의 십이지신상과는 조금 다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층 몸돌에는 힘찬 사천왕상이 강하게 조각되었다
사천왕상은 네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이며,십이지신상도 십이지방위신이라 하여
역시 수호의 관념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탑신부가 다른 것들에 비해  조금은 가늘어 보이지만 사천왕상과 십이지신상의 조각이 풍성하여
이를 보완하고 있다


탑은 8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중기에 접어드는 8세기가 되면 석탑 표면에 여러 가지 불교상을 조각하여 장식하는 일이 시작되고
9세기 이후에는 더 크게 유행한다
이 시기부터는 탑 자체의 존엄성보다는 장식성을 강조하게 된다
원원사터의 삼층석탑과 경주 남산동 삼층쌍탑 중 서쪽의 것이 대표적이다
탑의 높이는 각각 7m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遠願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1429호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산12-3 


동·서 쌍탑의 경주원원사지삼층석탑은 사적 제46호 경주원원사지 안에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동ㆍ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월호. 藤島亥治郞)〕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삼층석탑이며,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층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고, 하층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 기단 괴임이 있으며, 상층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고 있는 형상이다.


1층 탑신석 이상 3층 옥개석까지는 모두 1매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5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이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석과 앙화석이 남아 있다.


경주원원사지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형식, 옥개석의 돌다듬기 수법, 기단부와 탑신부에 구현된 양식, 석재의 조립방법 등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하층기단에서 십이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점 등 석탑의 조각기술,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