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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극락보전(神勒寺 極樂寶殿).경기 여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神勒寺 極樂寶殿).경기 여주

푸른새벽* 2007. 1. 5. 23:53

 

 

 

 

 

 

 

 

 

신륵사 극락보전(神勒寺 極樂寶殿)


신륵사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때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연려실기술』에 신륵사가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극락보전도 그때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 말 우왕 5년(1379) 각신(覺信).각주(覺珠)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세종 22년(1440)에 중수했다고 하는데,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8호로 지정된 지금이 극락보전은
정조 21년(1797)부터 3년에 걸쳐 완공한 건물이다


금당은 장대석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세워졌다
기단 위로는 추녀를 받치고 있는 4개의 활주가 있고,
다포계 양식의 겹처마에 날렵하게 들어올린 팔작지붕이 경쾌하다


극락보전의 구도에 따라 불단에는 목조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으며
화려한 닫집에 천장은 우물반자로 모양을 내었다
내부에 모셔진 탱화는 후불.신중.감로 탱화가 1900년,
지장탱화가 1908년에 조성되었고,영조 49년(1773)에 주조한 범종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신륵사극락보전(神勒寺極樂寶殿)


시도유형문화재 제128호(여주군)  
경기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 때 원효가 지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나옹화상이 오면서 크게 번창하였고, 성종 3년(1472)부터는 대규모로 확장시켰다. 성종 4년에는 절의 이름을 ‘보은사’라 하였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 한 것은 미륵 또는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말을 막았다는 설과 고려시대에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말을 인당대사가 신의 힘으로 제압했다하여 마을 사람들이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숙종 4년(1678)에 지어진 후 정조 21년(1797)에 수리되기 시작해서 정조 24년에 완공되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에는 불단 위에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위에 화려한 닫집이 꾸며져 있다. 또한 영조 49년(1773)에 제작한 범종과 후불탱화가 있다.


극락보전의 정문 위에는 나옹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오는 ‘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입체감 있게 쓰여져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수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